2. 마주 보지 않는 삶,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나는 사실 협의이혼 신청 과정에서 몇 번이고
그를 설득해 돌이키려 했었다.
이혼은 분명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서로에게 남긴 수많은 상처들을 되돌릴 수 없었고
이미 벌어진 상황들을 생각한다면
이혼 절차를 밟는 것이 맞았다.
다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양육자, 엄마로서의 나는
끊임없이 이 선택이 맞는지 고민했다.
또한 이혼을 결심한 순간에
오로지 내가 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는 자책과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빼앗는다는 죄책감이
매일같이 나를 짓눌렀다.
무엇보다 결혼 생활 내내 나는 그를 많이 의지하고 사랑했으며,
혼자 아이를 키우며 감당해야 하는
앞으로의 현실이 무척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노력(?)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조금은 부끄러움이 든다.
처음엔 부부상담에 관한 책을 읽고
그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최후에는 결혼식 전에 떠나온 신혼집으로
다시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날, 매일 같이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던 식탁에서
그와 나는 끝과 끝자리에 마주 앉아
부부로서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우리의 3년을 돌아보며 눈물을 참지 못했고
그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외면하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함께했던 내내 힘들게 했던 그의 회피는
여전히 나를 아프게 했다.
3시간이 넘게 걸려 신혼집에 도착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미리 써온 편지만 남겨둔 채
아이를 데리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나는 그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는 끝까지 대화를 거부했다.
결혼 생활에서도 우리의 모습은 언제나 같았다.
갈등이 생기면 그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항상 그와 대화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혼신청과 확인기일까지
그의 근무지이자 신혼집이 있는 지방 관할법원으로
서울에서 ktx를 타고 두 번의 여정을 오갔고,
2022년 1월 법적으로 한부모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책임감이 강했으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한번 자신이 결정한 일에는 그 외의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융통성이 없었다.
아내인 나의 이야기와 아이가 받을 상처 또한
그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던 걸까
아니면 양육자와 비양육자의 차이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 내가 문제였을까
작년 겨울, 3개월의 협의이혼 숙려기간 동안
나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