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한 심리상담
협의이혼 확정 후 다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2019년 섭식장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고
3년 만이었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다녔던 정신과에 먼저 방문했지만 현재 상태로 다시 받은 심리검사 결과는 암담했다.
가족관계에서의 트라우마,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가득했던 스물둘의 여자는 이별의 상처까지 더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물다섯 구제불능 우울증 환자가 되어 있었다.
내 안의 우울이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의사 선생님은
일단 약을 복용해야 한다며 처방해 주셨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정신과 약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언니는 1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정신과 약에 의지하며 살고 있었고 1년 전의 나는 언니를 이해할 수도,
내게서 언니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검사 결과를 듣고, 약을 처방받아온 이후로
다시는 정신의학과를 찾지 않았다.
대신 그 결과지를 가지고 친구에게 소개받은
심리상담사에게 연락을 취해 상담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상담을 한지 일 년이 되어간다. 상담을 시작할 무렵의 나는 자책감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어린 시절 방치되었던 마음의 병은
갑작스레 발현되었고 전남편이자 남자친구였던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했다.
그를 알기 전부터 섭식장애로 유명하다는 병원은
대부분 내원하며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들었던 그때의 나는 사랑이 모든 걸 치유해 줄 거라는 그의 말을 누구보다 믿고 싶었다.
나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어떠한 모습이라도
사랑하고 지켜주겠다는 그의 말이 내게는 그 어떤 약보다도 큰 치유였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런 사랑을 이야기했던 우리였기에
이 관계를 망쳐버린 건 결국 나의 우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깊이 빠져들 때면
스스로를 다그치며 수렁으로 빠뜨렸다.
이제는 나만이 유일한 보호자인 내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그저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내 안에서 문을 두드리는 현실에 절망스러웠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살아야만 했다.
3년 전과 같이 죽고 싶지만 간절히 살고 싶었다.
실은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려면 오랫동안 방치해 온
내 안의 상처받은 나와 마주하고
나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 다시 걸어가야 한다는 걸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일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넘어지고 또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