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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 Jan 30. 2023

그리움인지 미움인지 모를

6. 아이아빠라도 필요한 날

그런 날이 있었다.

"자니..?"

구남친들의 새벽문자와 같은 것마저도

이해가 되는 날.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날이었다.


그럴 때면 솟구치는 충동적인 마음을 달래며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양육자로서 아이아빠에게 연락하고 싶은 건지,

전남편에게 연락하고 싶은 건 아닌지.


이혼 결정 당시에 아이를 보지 않겠다 했던

그는 협의이혼 절차를 이야기하며

다시 아이를 2주에 한번 보고 싶다고 번복했다.

그 후, 꼬박꼬박 아이와 면접교섭을 지켜오던 그는

내가 싫어서, 더 정확히는 나와 소통하고 싶지 않아

면접교섭을 세 달째 하지 않고 있다.




혼자 아이를 돌본 경험이 하루도 없는 비양육자인

그가 양육자인 나에게 너의 양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꾸 갈등이 생기니

셋이서 보는 동행 면접교섭을 멈추고,

아이가 울더라도 무조건 자신이 데려가거나

당분간 아이를 보지 않겠다 말했을 때 깨달았다.


더는 노력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겠구나.

그렇게 처음으로 부모상담을 간 날이

우리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시리도록 추운 11월, 12월이 지나도록

아이는 아빠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면접교섭의 여파인지

어쩌다 아빠이야기가 나오면 아빠 집에 가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가끔 좋아하는 상어가족에 빗대어

“왜 아빠상어는 아기상어 보러 안 와?" 묻긴 했지만

아빠가 일하러 멀리 가셔서 나중에 보러 오실 거라는 식의 설명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그럴 때면 가슴 한쪽이 뻐근해 울컥하는 마음을

참기 힘들어 아이를 꼭 껴안았다.




나의 이불킥할 미련 빼고는 큰 문제없이(?)

협의이혼을 했지만 서로에게 풀지 못한 감정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현실이 그제야 와닿았을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렇다고 엄마와 떨어지는 게 싫어서

아빠 집에 가고 싶지 않다며 40분을 엉엉 우는

두 돌 아기를 눈앞에서 보고도 내가 보내지 않는 거라

말하는 그의 억지를 더는 용납할 수도 없었다.


아이아빠로서 그를 생각하면

원망과 분노가 차오르는 순간들이 온다.

비양육자가 아이를 봤다, 안 봤다 하는 일 자체가

아이에게 또 한 번 유기되는 경험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상담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감정에 따라 면접교섭을 진행하고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아이를 보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삼켜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도, 그도, 부모가 함께하는 가정에서 자라왔다.

그 누구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아빠가 함께 살지 않는 집에,

이혼가정에서 자랄 아이의 마음을 알 수도, 함부로 가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 아이의 마음을 엄마인 내가 평생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한다.




두 돌 아기와 이혼 부부의 나들이, 셋이 처음이자 마지막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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