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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 Feb 03. 2023

딸의 이혼을 알리기 부끄러운가요?

8. 엄마의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숨죽였다

결혼식 전날, 이혼을 결심하고 확정될 때까지 부모님께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셨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친정집에 올라온 상태로 이혼은 이뤄졌고, 관사가 아닌 신혼집은 따로 없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전부터 그와 나는 점점 크게 싸웠고, 결혼식 직전 그의 잠수로 인해 우리 부모님은 종이 청첩장을 단 한 장도 돌리지 않으셨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내 방 책상 아래 한구석, 그와 함께 열심히 접었던 청첩장이 그대로 쌓여있다. 아이의 태교일기와 육아일기, 그에게 받은 선물 등 차마 버리지 못하고 묻어둔 소중했던 추억들은 어느덧 짐더미가 되어간다.


이미 모바일 청첩장은 보낸 상태였고, 결혼식 전날 지인들에게 취소를 알려야 했던 부모님 입장이 어땠을까 짐작도 되지 않는다. 아빠는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하셨지만 엄마는 그의 할머님이 아프시다는 핑계를 대어 우리의 이혼을 덮어두셨다.




그렇게 다시 부모님과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엄마는 아무에게도 딸의 이혼을 말하지 않으셨다.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겠지만 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 하셨다.

나는 이모들과 엄마 지인들에게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간 딸이었다. 그들이 엄마와 연락을 할 때마다 이 집에 나는 있어선 안 될 존재였다.


딸의 이혼을 알리기 어려웠을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나의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생각에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나는 숨을 죽였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때조차 속삭였다.


속상하고 때론 화도 났다. 나 또한 이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부정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기에

엄마에게 화가 나는 건지, 그 화가 나를 향한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엄마는 전화만 오면 방으로 들어갔고, 모르고 말을 거는 내게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나의 결혼과 이혼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게 숨겨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친정집으로 돌아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남의 집에 온 듯 눈치가 보이고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더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막내딸도, 두 번째 아픈 손가락도 아닌 그저 불청객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내 삶이 창피해졌다.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어쩌면 아이를 데려온 것을 후회했을지 모른다.

다툴 때면 엄마는 늘 그의 이야기를 꺼내어 나의 죄책감을 건드렸다.

나는 언니의 이야기와 나의 상처를 불러와 맞섰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여전히 서로를 가장 아프게 하고 있었다.


이런 가정에서, 나의 문제투성이인 가족에 껴서 내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혹시라도 아이가 나와 같이 자라지 못한 마음을 가진 채로, 겉모습만 자란 어른으로 크게 될까 두려웠다.

처음으로 아이가 아빠와 함께하는 게 나았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1년 동안 끝이 나지 않는 자책 속에서 살아왔다.

부모님께도 아이에게도 그에게도 나만 죄인 같았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 편이 그나마 가장 편안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하게도 그것이 나를 망가뜨리는 최악의 방안이었음을 깨닫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젠가 상담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나의 삶을 다른 누군가의 삶으로 본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20대 초반의 한 여자가 결혼과 출산을 겪었고, 낯선 타지에서 아는 사람, 어느 누구의 도움하나 없이 매일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아이를 봤어요. 그리고 자신이 지치고 힘든 것도 모른 채로 버티다 끝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혼자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많이 힘들었죠.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남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는 안아주고 싶은 그저 한 사람이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는 이 싸움에서 나 혼자만 고군분투 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참 전에 끝이 난 싸움판에 홀로 남아 나는 어느 날엔 피해자였다가, 또 다른 날엔 가해자였다.





책상 아래, 지우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봉인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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