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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 Feb 06. 2023

부모님께 선전포고를 했다

9. 또다시 가족이 나오는 악몽을 꾼다

운동을 시작하고 한동안 나아졌던 불면증이 다시 심해졌다. 아이를 재우고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어도 깊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어났다.

그럴 때면 늘 비슷한 꿈을 꾸다 잠을 깬다.

또, 언니와 엄마가 나오는 악몽이다.   

어젯밤 꿈에서는 언니, 엄마와 함께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나에게 이혼에 대해 물으며 책망했다. 꿈속의 나는 매섭게 몰아붙이는 그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다.

구석까지 내몰린 마음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4시였다. 꿈속의 그들은 잔상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나의 뒤척임에 옆에서 잠들어있던 아이가 잠시 눈을 떴다.

"엄마 무서운 꿈 꿨어."

"울지 마 엄마, 내가 지켜줄게."

아이는 짧고 오동통한 두 팔을 힘껏 뻗어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곧 나의 토닥임에 다시 잠이 든 아이를 보며 비로소 마음이 안정됨을 느꼈다.

매일 불을 켜고 TV소리가 들려야만 잠이 들던 나는 더 이상 밤의 어둠이 무섭지 않았다.

나만 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 아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나머지 아이는 그저 아이로 방치되었다.

소설의 구절처럼 남겨진 아이가 어서 어른이 되어주길 모두가 바랐을지 모른다.

나의 십 대는 그랬다.

마음은 아이였지만 겉으론 애어른이었다.


엄마는 언니의 우울을 병으로 받아들이고 난 후에

어린 나를 데리고 유명한 아동상담센터로 향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여러 검사를 받았다.

상담사님이 말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렸고

꽤 오랜 시간 그 기억은 잊히지 않고 강렬하게 내 안에 남아있었다.   




부모님께 선전포고를 했다.

철없는 막내딸로 살아보겠다고.

나는 아직 마음이 자라지 않았다고 말이다.

앞으로는 26살이 아닌 16살의 나로 여기서 살겠다 선언했다. 엄마에게 다시 나를 키우라고 말했다.


어른스럽지 못한 불효녀라고 해도 하는 수 없다.

부모의 기쁨이 되어 사랑을 갈구하던 어리석은 착한 아이의 가면은 이미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더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끝없이 음식을 먹고,

사랑받기 위해 나를 굶기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당당해지자 다짐한다.

더는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

지레 나를 숨기고 스스로 삶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은 내려놓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나의 상처가 아이의 아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엄마는 늘 어린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아빠와 언니의 잘못된 행동을 문제 삼으며

항상 끝에는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니 때문에 엄마가 우는 날이 늘어날수록 언니가 미워졌다. 내가 보는 언니보다 엄마가 말하는 언니의 모습을 더욱 증오했다.  


여전히 꿈속에서 언니와 엄마가 크게 싸우는 날이면 안절부절못하는 어린 나를 발견한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 나의 세상이자 전부였던 엄마가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방문을 부서져라 닫으며 방 안으로 들어간 언니가 문을 잠근 채 안 좋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무섭고 불안했다.

둘 중에 한 명이 거실로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작은 발을 동동 구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불안의 씨앗을 심어 나를 키웠다.

그때부터 나는 착한 아이여야만 했다.

우리 집에서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의 아이가 지금의 아이다움을 잃지 않고 자라려면

엄마인 내가 강해져야 한다.





다른 이의 글로 위로받던 시절, 만년필로 처음 옮긴 책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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