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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 Feb 13. 2023

나를 굶기는 일이 가장 쉬웠습니다

11. 내가 미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2018년 7월 5일, 서울백병원에 내원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종강 후 여름방학이었다.

방학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섭식장애 방면으로 권위 있다는 교수님이 계시는

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향했다.

하루 일과의 시작으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올라선 체중계에서 33이라는 숫자를 확인한 날이었다.

한 학기가 지나갈 동안 이미 몸무게는 40킬로대에서 30킬로대로 내려간 지 오래였다.

병원 안 대기 환자들 속에서도

나는 가장 앙상하게 말라 보였다.

그 사실이 두려우면서도 내심 마음에 들었다.


먼저 부모님은 제외한 채 나만 상담실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나는 신발을 벗고

체중계에 올랐다. 체중은 교수님만 확인할 수 있도록 뒤를 돌아선 채였다.

숫자에 민감한 환자가 자신의 현재 체중을 알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겠지만 아침 일찍 올라선 체중계에서 본 숫자는 벌써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교수님은 나의 현재 상태를 체크한 뒤 다이어트 과정에 대해 질문했다.

 

다음은 부모님 차례였다.

부모님이 상담실로 들어간 뒤 주위를 둘러봤다.

병원 복도 한쪽 벽에 붙은 나이별 표준체중표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체중은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아이와 같았다.




며칠 후에는 심장내과에서 외래진료를 받았다.   

지난번 방문 때 심장초음파와 피검사 등

여러 검사들을 받고 갔기에 눈앞에는

검은 내 심장사진이 보였다.

심장은 아기 손바닥만 한 크기로

쪼그라들어 있다고 했다.

심장내과 교수님은 심각한 표정을 유지한 채 나와 부모님께 설명을 이어갔다.  

심장이 뛰는 속도는 45 BPM이고

40 이하면 호흡기를 해야 하고

20 이하면 사망이라고 하셨다.

이 상태로는 느리고 힘겹게 뛰고 있는 심장이

오늘 밤에라도 갑자기 멈출 수 있다면서

바로 입원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이주 뒤 다시 들어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실 안에서도 교수님은 나에게 입원을 권유했다.

몸에 지방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심장 주위로 지방을 대신해 물이 차있고, 그게 심장을 짓누르면 숨이 멎는다며 위험한 상태라는 설명을 덧붙이셨다.

심각한 저체중으로 그 외의 많은 신체적 질환도 의심되고 있으므로 당장 입원해 검사를 통해 체중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재차 거부 의사를 밝혔고 교수님은 단호히 시선을 돌려 부모님께 말했다.

"환자 본인이 입원을 거부한다면

강제입원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강제입원을 동의하는 아빠에게서 처음으로 단호함을 보았다. 엄마는 옆에서 말라가는 과정을 눈으로 모두 지켜보았기에 어느 정도 거식증이라는 병을 알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다이어트를 심하게 한 줄만 알았던 막내딸이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아빠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과 같았으리라.    

나는 작은 몸을 웅크리고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교수님과 앞으로 조금씩 양을 늘려 세끼를 먹어보고 경장영양제인 엔커버액을 처방받아 하루 6팩 추가로 섭취할 것을 약속한 채 겨우 강제입원을 면하고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시작한 다이어트는

목표 체중인 43킬로를 달성하고도 멈추지 않았다.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20kg의 무게가

내 몸 안에서 빠져나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학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내가 좋았다.

온종일 고구마 하나로 버티며

나를 굶기는 것이 가장 쉬웠다.

더 이상 다이어트가 아닌 그저 하루하루 줄어드는

숫자에 매달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지만 외면했다.

스스로 만든 규율을 하나씩 지킬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 채워지지 않던 것들이 메워지는 기분이었다.

살이 빠질수록 완벽하게 내가 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에 중독되어 갔다.

그때만큼은 언니의 병원과 학교에 맞춰 수없이 이사를 다니고, 내 의지대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가족의 그늘 아래서 벗어난 것만 같았다.

나만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조금만 운동을 해도 소금쟁이처럼 휘청거렸다.

겨드랑이에 살이 없어서 털조차 밀 수 없었다.
온몸은 조금만 부딪혀도 시퍼런 멍으로 물들어갔다.

심장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으려 발버둥 댔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걷는 것을 반복했다.
핏대가 꿈틀대며 온몸을 뒤덮어도, 마디마디 튀어나온 뼈마디가 징그럽지 않았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한여름의 공기가

내 더딘 심장을 괴롭히고 있음에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놔버릴 것 같은 상황의 연속이지만 나의 강박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왜 나는 나아지고 싶은데, 여전히 말라가는 걸까?
어서 벗어나고 싶은데, 왜 벗어나기 싫은 걸까?
정말 그냥 이대로 죽고 싶은 걸까..

1kg 찌는 게 왜 이렇게 두려운 걸까..

매일매일 도무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마음속에서 나는 스스로 되뇌고,

끊임없이 길을 잃고 방황했다.
나도 이런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 몸은 더욱 볼품없이 말라갔다.



 

그해 여름, 몸에 지방이 1kg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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