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피부에 닿는 감촉이 서늘하다. 낮에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어서 밖으로 나가 조금 움직이다 보면 가을은 저만치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눈을 들어 위를 보면 어느새 하늘은 푸른 물기를 가득 머금고 높아져 있고, 그 아래 나뭇잎은 조금씩 수줍게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빨갛게 단풍이 물들려면 아직 한 달은 기다려야겠지만, 벚나무에는 노란 잎이 드문드문 보이고 성질 급한 은행나무는 벌써 반쯤 노랗게 변해가는 찰나, 은행이 익어 길거리를 덮고 뒹군다. 벌써 사람들 발에 밟혀 납작코가 되어 역한 냄새를 풍기는 것도 있고, 여자아이 머리를 묶는 방울처럼 동그란 은행알이 두 개씩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옛날에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엔 은행을 따서 아빠 술안주로 대령하기도 하고 밥이나 고기 요리에 넣어 먹기도 했는데, 이제는 지천으로 떨어져 천대받는 열매가 되어 버렸는가. 우유갑에 은행을 넣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익혀 먹었던 신혼시절의 추억이 내게도 있다.
더위가 한풀 꺾여서 운동하기 좋겠다고 오랜만에 저녁 산책을 갔다가 옴팡 감기몸살에 걸려 버렸다. 긴 바지에 칠부 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갔는데도 저녁의 찬 공기는 피부를 식히고 코와 입을 통해 폐부까지 흘러들어가 계절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중년의 몸을 잠식했다. 휴식이 필요하다며 허리가 아플 때까지 누워서 뒹굴뒹굴 책도 보고 느긋하게 낮잠까지 잤다. 주말에 아픈 것이라 여유롭게 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렇게 몸살 기운을 날려 보냈지만, 완연한 가을이 되어 찬 기운에 익숙해지기까지 몇 번이고 감기 기운은 다가올 것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피곤함이 곱절로 남는다. 그것은 주변의 변화를 느끼며 조금 쉬어가라는 자연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스커피만 찾던 입이 조금씩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바뀌고, 반팔 티셔츠 위에 걸칠 카디건이 필요해질 때면 아름다운 날씨가 아까워 주변의 공원이라도 산책하게 된다. 괜스레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시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책 한 권 들고 가벼운 여행을 떠나기 좋은 아름다운 계절이 지금 다가오고 있다. 바람에 뒹구는 흔한 낙엽도 음악처럼 다가오는 계절, 가을이. 여름이 지나가는 자리에 선물처럼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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