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 꿈을 심어준 칭찬 한마디
6살 때,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세잔미술학원'이라는 유치원을 다닌 기억이 있다.
비록 나는 밤색과 남색으로 스케치북을 북북 칠하는 조금 이상한 아이였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모양인지 인연이 되었다.
그렇게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아이였으니 7살까지 다녔으면 꽤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나는 옆 동네 수영장이 있는 희소 유치원에 그만 현혹되어
세잔 미술학원과의 인연은 1년 만에 끝이 났다.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도 마다한 어린아이는
수영을 하며 밝고 활발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초등학교에선 반에서 조용한 아이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소심하고 숫기가 많은 성격 탓에, 잠깐 수영으로 쏠렸던 관심은 다시 그림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바타 옷 입히기 게임을 스케치북 연습장에 그려
반 여자아이들의 관심을 한 번에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조용한 관종이었던 모양이다.
내심 아주 흐뭇해하며 반 아이들의 관심을 더 받고 싶어
열심히 그렸던 기억이 여전히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는 그 당시 또래 아이들처럼 만화에 푹 빠지고
직접 자로 컷을 그려가며 만화를 열심히 그렸다.
오타쿠 냄새를 풀풀 풍길 뻔했지만(당시 오타쿠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표현했다),
때마침 밝고 유쾌한 친구들에게 크게 관심을 받을 일이 생겼다.
너 되게 옷 잘 입는다!
언니의 까만 스키니진을 입고 학교에 간 날이었다.
당시에는 빅뱅도, 소녀시대도 없었다.
얼짱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하며 중학생 언니들 사이에서 막 입기 시작하던 까만 스키니진이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띈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조용한 관종이었던 나는 패션이라는 장르 자체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엉뚱한 점은,
내 관심이 패션 스타일링이 아니라 패션 디자인으로 쏠렸다는 것이다.
샤넬, 루이비통은 물론이고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크 제이콥스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매번 피땀 흘려서 발표한 런웨이가 실린 잡지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그만 중2병의 콧대를 하늘같이 높여버린 탓에,
너도나도 똑같은 동대문 스타일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반 여자아이들은 교복도 줄여 입고 제법 깜찍이 마냥 입고 다녔지만,
나는 펑퍼짐한 교복치마를 주섬주섬 입으며 조금은 우중충한 분위기로 지냈던 것 같다.
여전히 조용한 아이였지만, 나는 내 잠재능력에 스스로 취해있었다.
패션잡지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 수많은 영감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잠재 능력은 어린 내게 칙칙하고 답답한 입시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신기루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샤넬에 버금가는 패션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꿈에 부풀었고, 그러리라 믿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