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입니다. 방해 금지!

도심 속, 나만의 여백

by 유혜빈


당신은 하루를 어떻해 마무리 하시나요?

나는 매일 저녁 산책을 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만 아니라면

하루도 빠짐없이 걷는다.


누군가에게 산책은 잠깐의 운동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나답게 숨 쉬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혼자 다녀? 심심하지 않아?”

“같이 다닐 사람 없어?”

“혼자면 재미없잖아.”


하지만 나는 속으로 웃는다.

No, No!

혼자 걷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풍요로운 시간이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생각과 상상, 그리고 잠깐의 자유가 피어나는 시간.


하루는 늘 정신없이 흘러간다.

몸은 스케줄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데

생각은 늘 한 발 늦게 따라온다.


그런데 산책하는 이 시간만큼은 다르다.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멈춰도 괜찮고,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가 중심이다.


나는 도심 속 공원을 걷는 걸 좋아한다.

혼자 걷는 사람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팔짱 낀 연인들, 말없이 걷는 부부들.

다들 각자의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조용히 서 있다 보면

문득문득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웃음소리, 발자국 소리, 다정한 목소리…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그 소리들이 괜히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해 준다.


어떤 날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이 눈에 들어온다.

조심스레 꺼내는 말, 서로를 살피는 눈빛,

오가는 말속에 설렘이 가득하다.

말끝마다 “너 먼저 말해~” “아니야~ 너부터~”

알콩달콩한 눈빛 주고받으며,

서로 웃고 챙기고 눈치 보고…


지금의 나는

“밥 먹었어? “ ” 몇 시에 와? “ ”분리수거해 줘 “

이런 생활형 멘트에 묻혀 지낸다.


그래도 가끔은…

“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싶다가도,

“앞으로는 오지 않을 시간이겠구나…” 하고

그 시절이 살짝 그립긴 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지금이 좋다.


공원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냥 뛰어노는 것만 봐도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도 우리 아이들과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뛰지 마, 다친다!”

“거기 올라가지 마!”

쉴 새 없이 외치고, 쫓아다니고,

지친 얼굴로 오늘 하루를 간신히 마무리하던 날들.


그땐 지쳐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왜 그렇게 그리운지…

사진만 봐도 눈물이 또르르 흐를 때가 있다.

지금의 아이들도 언젠가는 또 그리워지겠지…

“언제 크냐…” 했던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고 나서는

함께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진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한 해 한 해가,

참 귀하고 소중하다.


산책하다가 눈에 들어온 한 노부부.

서로 손을 잡고, 속도를 맞추고,

때로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쉬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다.


“거긴 미끄러워, 조심해.”

“여기 앉아서 쉬어, 다리 아파 죽겠어.”

“이 손 좀 잡아봐, 넘어지겠다니까~”

다정한 말투는 아니지만,

툭툭 던지는 말 안에

오랜 시간 쌓인 애정이 묻어난다.


오늘 내가 본 커플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와, 그렇게 천천히 늙어가는 중이구나.

비슷한 말 백 번씩 반복하고,

티격태격하다가도 결국 같이 걷게 되는 그 사이.

결국엔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그날따라 마음에 포근히 와닿았다.


언젠가는 우리도

서로의 걸음을 기다려주고

숨이 차면 괜찮다고 손을 꼭 잡아주는 사이가 되겠지.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나눠 들고

천천히 걷다가

말없이 나란히 앉아 쉬어가는 그런 사이로.


물론 그날도

“왜 이리 늦게 나왔어”,

“옷이 이게 뭐야 맘에 안 들게.”

하고 티격태격하긴 하겠지만…

생각만 해도 꽤 괜찮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조용한 발걸음이지만, 생각은 시끄럽게 흐른다.

그게 나에겐, 가장 괜찮은 하루의 마무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