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맛있다

도시의 숨이 한 박자 느려진다.

by 유혜빈


이상하게 금요일 저녁이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냥 기분이 좋다.


거리엔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사람들 얼굴엔 조금씩 여유가 번진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평일의 끝,

누군가에겐 가장 기다려온 하루.

사람들은 저마다의 약속을 품고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녁 거리로 나선다.


공원길을 따라 이어진 식당가.

산책길은 이미 잔잔한 축제로 가득하다.

식당마다 들려오는 웃음소리,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고기 굽는 냄새, 튀김 냄새,

걸을수록 배가 고파지는 산책이다.


길은 북적이지만, 마음은 느긋하다.

데이트하는 커플들, 친구를 찾는 학생들,

외식을 기다리는 가족들.

모두 각자의 이유로 이 길에 있고,

그 얼굴마다 금요일 저녁의 온기가 스며 있다.


내게 금요일은,
산책이 아니라 미각의 여행길이다.


첫 번째 코스는 공원 옆 이탈리안 레스토랑.

와인잔이 가볍게 부딪히며, 웃음이 테이블 위로 번진다.

부라타 치즈를 얹은 루꼴라 샐러드 위에

발사믹 소스가 실처럼 흘러내리고,

크리미한 치즈와 짭조름한 향이 혀끝에 머문다.

오븐에서 갓 나온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올리면

치즈가 끝없이 늘어지며 반짝인다.

노릇하게 구워진 도우 위엔 페퍼로니와 향긋한 바질,

그리고 촉촉하게 스며든 토마토소스가 어우러져

한 입만으로도 감각이 깨어난다.


이곳의 저녁은

한입, 한 장면, 한 대화가 어우러진 작은 영화 같다.


다음은 치킨집.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가족.

말 없이 나누는 첫 조각.


입에 넣는 순간 ‘바사삭’ 하고 터지는 소리,

얇고 바삭한 껍질 아래 촉촉한 속살이 숨어 있다.

노릇하게 튀겨진 껍질에서 육즙이 살짝 튀어나올 때,

시원한 탄산이 그 맛을 감싼다.

하얗게 김서린 차가운 맥주 한잔이

입안 가득 거품을 퍼뜨릴 것만 같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지만,

귀에는 여전히 바삭한 튀김 소리가 맴돌고

눈은 이미 그 테이블에 앉아 있다.


그 사이 지난번 다녀간 오뎅바가 보인다.

좁고 아담한 바 테이블.

사케잔 사이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오뎅들이 따뜻한 국물 속에 잠겨있다.

유부주머니 하나를 한입 깨물면,

진하게 우러난 육수가 입안 가득 퍼진다.


그 옆 사케잔에서는 은은한 향이 잔잔히 피어오른다.

한 모금 넘기면, 오뎅 국물의 온기와는 전혀 다른

깔끔한 맛이 목을 타고 부드럽게 천천히 내려간다.

서로 다른 온도의 조화가

묘하게 마음을 정리해주는 기분.


혼자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이 집 앞에선 꼭 한 번 든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야외에 테이블이 늘어선

삼겹살집이 눈에 들어온다.

형광등 아래 둥근 테이블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판 위에 도톰한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기름이 튀는 소리, 한쪽에서는 김치와 콩나물이

철판 위에서 함께 익어가고,

마늘은 바삭하게 구워져 고소한 냄새를 퍼뜨린다.

구운 김치와 함께 한 점 먹으면

감칠맛이 입 안에 꽉 차 젓가락을 멈출 수 없다.


소주잔이 부딪히고, 누군가는 갓 구운 삼겹살을

옆 사람 접시에 툭툭 얹어준다.

그 장면이 괜히 정겹다.


그리고 마침내, 하이라이트. 숯불 갈비집.

한 블록 전부터 퍼지던 냄새의 정체.

입구 앞에서부터 지글지글 타닥타닥…

고기 굽는 소리가 귓가를 두드린다.


가게 밖까지 퍼진 연기 속,

숯불 위엔 양념이 잘 밴 갈비가 도톰하게 놓여 있다.

갈비살의 결 사이로 육즙이 차오르고,

한 면이 구워질 때마다 불꽃이 피어오르며

살짝 탄 자국과 불향이 고기 사이로 스며든다.


고기 한 점을 쌈장에 찍어

상추에 밥과 마늘을 얹어 돌돌 만다.

한입에 넣는 순간,

육즙이 터지며 고기의 단맛과 불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씹을수록 짭조름한 양념이 밥알과 어우러지고,

고기 기름과 쌈채소의 아삭함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이 순간, 금요일이 완성된다.

그 한 점의 갈비에 담긴 온기가,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말없이 녹여준다.


오늘 나는 걷고 있을 뿐이지만,

이 길은 온전히 맛으로 기억된다.

누구와 이 길을 다시 걷게 될까.

어떤 음식, 어떤 대화, 어떤 웃음을 나누게 될까.

오늘처럼 맛있는 금요일 저녁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그 상상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나의 마음은 이미 코스로 가득 찬 만찬 중이다.

오늘, 산책은 운동이 아니라 미식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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