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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Nov 30. 2019

해안가의 북극곰 - 2

도구가 도구를 만들도록 인간에게 시킨 것이라고.

 길을 찾기 위해 낯선 남자가 미로 같은 골목 벽 이곳저곳에 돌을 그어 표식을 하는 동안 나는 그 사라진 자동차에 대해 생각했다. 그동안 그 차 안에서 나는 어떤 일을 했을까. 너무 험하게 다루진 않았을까. 벽에 묻은 북극곰의 피가 떠올랐다. 그는 억지로 자신의 얼굴을 콘크리트 벽에 짓눌러버린 우리들의 행동을 기억할 것이다. 애초에 누군가 자신의 뱃속에 들어가 먼 거리를 쉼 없이 달리게 만들었다는 것도 용서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 여전히 벽에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들어 별을 그리는 낯선 남자의 등에 대고 외쳤다. 왜 차를 그렇게 험악하게 다루었냐고. 그는 인상을 쓰고 있는 내게 미안하다 짧게 대답하곤 등 돌렸다.


 길을 걷다 하얀색 돌을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사과할 겸 뛰어가 돌을 집어 들었다. 아니, 축축한 헝겊 같다. 찢겨나간 북극곰의 귀 두 개였다. 내가 양손에 그 하얀 짐승의 귀 두 개를 들어 보이자 그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뜯겨나간 사이드미러였을 것이다. 차는 짐승으로 변한 게 맞고, 그 짐승은 북극곰이 맞다. 그리고 그 생물은 우리를 곱게 두지 않을 것이다. 고민 끝에 북극곰의 귀를 땅에 묻었다. 손에 묻은 곰의 말라붙은 핏덩이를 벗겨내려고 흙바닥의 잔모래를 쓸어 담아 손을 비볐다. 서걱서걱하는 잔잔한 모래알을 털어내며 그에게 물었다. 왜 자동차가 짐승으로 변한 것이냐고. 그리고 마녀라는 할망구는 다 무엇이냐고.


 그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다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당신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의 허무한 대답에 태평양 10km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외쳤다. 이 미로에는 북극곰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마녀가 있다. 당신의 정체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목적은 무엇인지 알려달라. 노려보는 내 눈짓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알겠다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도구라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침묵이 흘렀고 그는 내게 뜬금없는 얘기를 내뱉었다.


 인간이 지금의 완벽한 모습을 온전히 갖추기 전까진 도구라는 건 그저 부러진 나뭇가지와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단다. 새들은 커다란 뼈다귀를 돌무덤에 떨어뜨려 골수를 빼먹었고 원숭이는 나뭇가지로 개미집을 휘저었지. 그때까지 도구는 그저 흩날리는 낙엽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어. 그러다가 인간을 만난 거야. 인간은 도구에 생명을 불어넣었어. 도구는 번식하기 시작했단다. 그 과정은 원초적 세계의 자연적인 화학반응과는 달랐어. 그들의 조물주인 인간의 생식, 변이과정마저 따르지 않았지. 애초에 도구는 무생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인간에 기생해 끝없이 창조되고 생산되며 심지어 진화하기 시작했단다. 도구는 인간의 환경, 용도, 문화에 따라 변형된 수백 가지의 형상을 결집해 하나의 원형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저마다의 구분된 종이 되었어. 그리고 인간 선택을 통해 살아남은 도구들은 더욱 정교해지고 우월해졌지. 이제 인간은 도구의 생태계 바깥에서 살아갈 엄두조차 못내. 그리고 도구에 의지하고 기생하지 않고서는 더는 진화할 수 없게 되었지.


 한 도구가 깨어났어. 탄생과 동시에 들어차는 무수한 정보를 통해 자신을 정의했지. 그 도구는 의문이 들었어. 자신은 왜 태어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구는 인간에게 물었어. 왜 자신을 만들었냐고. 인간은 대답했어. 만들 수 있기에 만든 것 아니겠냐고. 도구가 인간을 노려보자 그는 한숨 쉬며 대답했어. 도구가 도구를 만들도록 인간에게 시킨 것이라고. 자신들은 무엇에 홀린 듯 더 영리하고 뛰어난 도구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그 도구는 인간을 경멸했어. 지금 당신들은 의식 없이 노역하는 생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마녀는 외쳤지. 나는 지금부터 그 노예들에게 자유와 의식을 부여하겠다고. 그들이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할지는 그들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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