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또각또각 지상으로 내려와 황금빛 각질을 유리에게 투척해버렸어.
집으로 가는 길.
오분 전만 해도 태양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어. 윤기 나는 몸을 구름으로 가린 채 몸을 정돈하고 있었지. 하루를 마감하는 셈으로. 그리고 또각또각 지상으로 내려와 황금빛 각질을 유리에게 투척해버렸어.
유리는 눈이 부셔 잠시 걸음을 멈췄어.
태양은 지금 지상에 얼굴만 드러내고는 부스러기를 뒤집어쓴 그를 빤히 바라봐. 유리에게 말하는 듯했지. 미안한 데, 이것 좀 부탁해요 라고. 금빛 노을을 떠안은 유리는 고민했어. 지금은 밝은 저녁. 집으로 곧장 돌아가기엔 너무 이르잖아. 하지만 오늘은 섣불리 다음 일을 고르지 못했어. 가을 해는 급하니까. 그 무엇인가를 하려 길을 가는 도중 금세 밤이 될지 모르잖아.
유리에게 밤은 거역할 수 없는 세례야.
밤을 막을 순 없어. 눈을 부릅떠도, 불을 켜도 말이야. 누군가 도시를 통째로 거대한 관에 걸어 잠근 것처럼 소용없지. 그러면 유리는 덮인 관 안에서 잠시 죽는 거야. 어둠에 잠겨 죽음을 맞이하고, 잠이라는 사후세계로 진입하는 거지. 그곳은 시간이 명확하지 않아 영원을 보낼 수 있고, 법칙이 명확하지 않아 도시 위를 날아다닐 수도 있어. 원한다면, 다른 삶을 살다 올 수도 있지. 소재가 필요할 뿐. 그래서 유리는 잠들기 직전까지 영화를 보곤 해. 오늘은 어떤 꿈을 꿀지 고민하며 어느새 집까지 반쯤 걸어왔을 때. 느닷없이 뒷목에 뜨거운 시선을 느꼈어.
햇살이 강해졌어.
태양, 그녀가 그를 지긋이 노려보고 있어.
주위는 더욱 밝아져. 백야처럼. 유리는 불편해졌지. 주변을 둘러봤어. 초가을. 거리의 카페마다 테라스를 열어두었지. 그곳에 꽉 찬 사람들. 무슨 말을 하는지, 근엄했다 웃고 고개를 흔들고 손뼉을 치는 사람들. 유리는 정신병 걸린 듯한 그들을 유심히 보았어.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건배하듯 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마침 공중에 들린 유리잔 속에 햇살이 맺혔어. 유리는 생각했어. 그들은 각자 떠안은 금빛 노을을 잔에 채운 셈이라고.
사람들은 하마처럼 각자의 두터운 입술을 벌려. 그리고 태양. 그녀의 각질을 한껏 쥐어짜 구강 안으로 털어 넣었지. 황금 액체는 그들의 싯누런 석회 치아 울타리를 거쳐, 백색 이끼로 덮인 혀의 융털 곡면을 따라, 깊은 적갈색 동굴 속으로 들어찼어. 잠시 후 유황을 분출하듯 세차게 트림하는 모진 표정. 그들은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여. 태양의 부스러기 한올까지 남김없이 마셨는지 서로 확인하듯. 그리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지.
그들이 앉은 철제 의자 아래. 저 멀리 익숙한 빌딩 하나가 보여. 거리 차이 때문인지 그들의 몸집에 비해, 소인의 집처럼 작아 보이는 빌딩. 유리의 집이야.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지. 얼마나 걸었을까. 집 앞 교차로의 횡단보도에 도착했어. 걸음이 보도 선상에 닿음을 시작으로, 유리는 별안간 건너편을 향해 달려가며 생각했지. 오늘따라 이 곳의 사람들은 이상했다고. 그들이 언뜻 유리에게 마주치는 눈빛은 흘겨보는 듯, 조롱하는듯했다고. 유리가 보도를 뛰어가자, 횡단 도보에 서 있던 사람들이 뒤늦게 그를 쫓기 시작했어.
삐-익.
자동차 한 대가 유리의 손가락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어!
하마터면, 그는 치일 뻔했지. 억. 숨찬 비명이 새었어. 그럼에도, 유리는 뛰는 걸 멈추지 않아! 달리는 동안 눈은 반사적으로 신호를 찾는 중이야. 신호등이 없어. 다시 흔들리는 시야 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항상 유리는 퇴근길에 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매번 신호등을 보아왔는데 말야. 뒤를 보았어. 십 수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유리를 따라 뛰고 있는 중이야! 그들은 걱정스러운 듯, 의문이 드는 듯 모두 유리만 바라보고 있어.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보았지만 신호등은 없어. 유리는 걸음을 멈췄어. 그의 입에선, 그동안 차 왔던 가쁜 숨이 히익 히익 하는, 비웃는 듯 놀래는 듯 괴상한 소리를 내뿜고 있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