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초들은 물뱀이 되어 유리에게 발을 걸었어.
나는 지금처럼 물에 빠진 적이 있어.
열 살이 되었을 때 해수욕장에서. 지금 절반 정도의 키였는데, 언젠가 엄마 손을 뿌리치고 목욕탕 남탕 입구에서 보았던 소인이라는 단어가 무척 어울리는 시기였지. 당시에 큰 고민이 하나 있었어. 그쯤 나이가 되면 알잖아. 이제는 더 이상 부모가 업어 기를 나이도 아니고, 그만큼 사람들의 애정과 칭찬도 이제 소홀해진다는 걸. 참 잘했어요 보다는 잘 해야지를 듣게 되는 첫 번째 나이. 어린이들은 이제는 각자 불평등한 조건으로 경쟁해야했지. 나보다 뛰어난 아이들 앞에서 이젠 누구도 나를 칭찬하지 않아. 소인들의 세계에서 소인이 된 난, 늘 일기장에 쓰곤 했어. 왜 이럴까.
어느 날 어른들 손에 이끌려 간 해수욕장 너머에는 깊은 바다가 있었어. 나에겐 수영복 팬티 하나가 주어졌는데 왜소한 골격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 싫어서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지. 내 허리 정도는 투망 안 모래처럼 거뜬히 통과하는 노란 튜브를 힘껏 짊어진 채로. 더 깊은 곳으로 숨고 싶었어. 그렇게 물살을 헤쳐나가며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발바닥에 모래가 쌓이지 않았어. 나는 불안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른들은 거뜬히 서 있었지.
그들은 내게 말했어, 무서워하지 말라고. 발이 땅에 닿지 않느냐고. 나는 말했어. 닿지 않는다고.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말했어. 꼭 닿을 필요는 없다고.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우게 될 테니. 혼자 헤쳐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파도가 어른들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허리춤만큼 가라앉을 때면, 나는 허공으로 솟구쳤어. 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중심을 잡으려 할 때는 내 머리가 모래바닥에 파묻혀 바닷물을 뱉어 내곤 했지. 어른들은 웃으며 내 등을 두드리고는 말했어. 잘하고 있다고.
그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또래들이 있는지, 있다면 나처럼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어. 계속 모래와 바닷물을 마시다 보니, 이젠 노란 튜브에 올라 타 내 키보다 깊은 곳까지 나갈 수 있었어. 나는 흥분된 마음에 소리도 질렀지.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알리고 싶어서.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어. 저 멀리 몰려있는 색색의 점들로 보였지. 스티로폼을 묶어놓은 울타리 안에 다들 모여서.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어. 돌아가고 싶어. 가서 내가 저 멀리 다녀왔다고 얼른 말하고 싶었지. 어른들 품에 안긴 채로. 그런데 나아갈 수가 없었어. 내 발목에는 어느 순간 검은 해초들이 엉켰고. 발버둥 칠수록 검은 그물은 더 촘촘하게 엮어질 뿐이었지. 큰 소리로 외쳐도 아무도 듣지 못했어. 얼른 묶인 발을 빼려고 몸을 일으킬 때, 뒤집어졌어. 노란 튜브는 그 반동으로 수면 저편으로 멀리 튕겨져 나갔지.
어디 한번 혼자 잘 해보라는 듯이.
우주에서 회전하는 유성처럼 내 시야에는 하늘이 넘어지고 검은 수면만 보여. 손을 휘저어보아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팔과 허리에 해초들만 더 감겼어. 감촉은 너무도 미끄러워서 며칠 전 동물원에서 만져 본 뱀 비늘 같았지. 숨을 참을 생각도 못했어. 벗겨진 안경 때문에 보이지 않는 내 눈앞엔 일식처럼 윤곽만 드러낸 무수한 검은 공기방울들이 보여. 그건 내 입에서 뿜어지고 있었어.
공기방울에 휩싸인 채 바닥에 내 몸이 턱- 하고 부딪혔을 때. 살고 싶었어. 누군가 날 도와주길 바랬지.
몸이 다시 뜨기 시작했어! 얼굴이 수면 위로 솟구쳤어. 밝은 세상이 보였지. 눈부실 만큼. 난 살아난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는 뜨고 가라앉음을 반복하다 결국엔 가라앉는다더라. 다시 가라앉았어. 생각이 들었지. 역시 이렇다고. 체념하니 몸이 안락해졌어. 나는 수면을 향해 누워있는 자세였어. 물결에는 푸른 하늘이 일렁이고 있었지. 점점 밑으로 가라앉는 만큼 체세포처럼 생긴 물결은 어두워졌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다는 게 괴롭지는 않아. 바다가 점점 따뜻해지고 물결은 느려져. 모든 순간이 천천히 흘러갔어. 그 여유로운 순간에 한 가지 생각만 들어. 난 죽는구나. 내 몸에 감긴 갈색 해초들이 눈앞에서 일렁이고 있지. 아름다워.
그 순간 해초들이 내게 말을 걸었어.
물뱀처럼 내 몸을 다시 휘감았다 풀었다 반복하며.
“이제 알겠니. 넌 아직 어른이 못 됐어. 그저 작고 마른 소인일 뿐이야. 이런 마음가짐으로 넌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어. 세상은 홀로 살아가야 해.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널 지금처럼 맹목적으로 사랑할 수 없어. 너도 누군가를 그렇게 아낄 수 없거든. 난 널 잘 알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어. 내기를 걸어도 좋아. 더 이상 의지하지 마. 홀로 잠들어야 해. 더 이상 아프다고, 힘들다고도 말하면 안 돼. 모든 고통을 스스로 참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을 때, 그때 어른이 되는 거야.”
눈을 떴을 때,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있었어.
휑한 몸통을 하늘에 훤히 보인 채로.
사람들은 주위에서 즐겁게 웃고 있었지. 서로 물을 뿌리고 물에 빠뜨리며.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탔는지 아니면 나약한 자신에 대한 모멸감 때문인지 그때 얼굴이 화끈거린 걸로 기억해. 나는 갈증으로 갈라지는 목으로 겨우 혼잣말을 했었지. “더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