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0일부터 3월 26일까지의 일주일.
어떤 식으로 써야 더 읽기 편하고, 내용도 빈약하지 않은 포스팅이 될까 고민 중입니다. 이곳에 익숙해지고 생활 패턴도 바뀌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네요.
처음 방문해 본 동네 음식점. 지나갈 때마다 늘 사람이 많길래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 간판도 식기도 검은색이라 모던할 것 같았으나 그렇진 않았다.
훈뚠탕과 비슷한 탕 종류와 물만두를 시켰다. 무슨 맛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후에 다시 갈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으니 대만 사람들에게는 꽤 맞는 편일지도.
이번 달은 휴일이 너무 많아 쉬는 날 식사를 하는 것도 큰 일이다. 이제 동네에서 안 간 곳이 별로 없다 보니 쉬는 날은 밥 먹는 게 머리가 아플 정도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옆 동네 용춘까지 걸어갔다. 훈뚠탕을 파는 곳이라길래 들러봤다.
반찬에 콩나물 볶음이 있어 냉큼 집어왔다. 맛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더라. 주문한 훈뚠탕의 양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반찬 먼저 먹으면 안 되건만 콩나물은 사랑이잖아요. 나는 나물류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건 고사리나물과 숙주나물. 숙주나물은 일본에서 살 때 자주 만들어 먹곤 했다. 도시락 반찬에도 싸 가고. 숙주나물만큼은 좀 괜찮게 만드는 것 같다. 식욕이 많지 않다 보니 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건 매번 귀차니즘에 대패하곤 한다. 다음에 또 와볼까란 생각이 들었던 걸로 기억하니 맛도 괜찮았던 걸로 기억한다.
세 번째로 방문한 복대. 물만두가 인기라고 하길래 시켜본 물만두. 하지만 쏸라탕에 만두가 들어간 것일 줄이야. 예전에 이미 이 가게에서 쏸라탕을 먹어본 적이 있어서 내가 주문한 것도 아니고 다시 쏸라탕을 먹는 것이 반갑지는 않았다. 두 번째로 먹으면 첫 번째 먹었을 때만큼의 맛이 안 나는 징크스(?)가 있어 웬만큼 마음에 든 음식 아닌 이상엔 두 번 이상 먹는 것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자를 다시 보니 물만두가 아니라 탕에 만두를 넣은 것이다. 첫 번째 방문에선 쏸라탕과 짜장면을, 두 번째 방문에선 찐만두를, 세 번째 방문에선 탕 만두를 먹어 본 결과, 내 취향은 짜장면 정도인 것 같다.
-첫 번째 방문에서 짜장면을 먹은 이야기 https://brunch.co.kr/@ryuj/72
나 이 집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쫑샤오뚠화 역 근처의 일본식 수타 우동집, 호시나. 평이 하도 좋아서 크게 마음먹고 방문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가 오픈을 기다렸고, 바로 이 집의 간판 메뉴인 냉우동을 주문했다. 내가 생각한 냉우동과는 전혀 다른, 도대체 무슨 맛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비주얼이라 다소 놀랐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이 집의 맛은 '맛있다'의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맛으로써 느낄 수 있는 맛은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우동을 먹고 여섯 번째 맛을 굳이 붙이고 싶었다. '정성스러움'.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니 미각이라 할 순 없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맛'이라는 것이 존재하다는 것을 이날 처음 경험했다.
가득 뿌려진 깨의 고소함과 유자의 향긋함, 그리고 면의 쫄깃함. 맛도 식감도 자극적이지 않아 더욱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쓰면 누군가가 '타이베이에서 꼭 가봐야 할 맛집'이라고 적어서 '얼마나 맛있는지 보자!'마인드로 달려들 것 같아 걱정되지만, 사람의 입맛은 다 다르고, 나의 입맛은 '전형적인 한국인 입맛'과는 거리가 멀고, 그런 내 입맛으로는 이런 감상이었다는 것뿐이다. 굳이 갈 필요는 없지만 대만 음식이 입에 안 맞거나, 동취 지역에 숙소가 있는 사람이라면 들러보는 것을 추천하긴 한다.
음식을 추천할 땐 아무래도 소심해진다. 로컬 맛집이 유명 맛집이 되어 외부 사람들이 몰리면서 평판이 안 좋아지는 것을 한국에서 살던 동네에서 봤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겐 맛있는데 '찾아가서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다'식의 후기를 보면 괜히 내가 속상해져 입이 삐죽 튀어나오게 된다.
두 번째로 방문한 소롱포 집. 역시 두 번째는 첫 번만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새 입맛이 바뀌어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게 먹은 곳은 처음 그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재방문하지 않는 것이 내겐 어울리는 방식인 것 같다.
함께 근무하는 분과 처음 가본 철판 요릿집. 간판에 철판 볶음집이라고 쓰여있는 건 여러 군데 봤는데 사실 일본식 철판 볶음일 줄 알고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본식 철판 볶음은 만날 채소를 간장에 볶는 이미지가 강했다. 너무 안주로만 인식해왔던 것 같다.
메인은 어떤 것으로 먹을 것인지, 채소는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묻길래 중국어를 잘 하는 동행자께서 통역을 해주셨고, 나는 새우와 숙주나물로 선택했던 것 같다. 이 곳은 꽤 여기저기에 있는 체인점이고, 밥과 국, 동과차는 셀프로 먹을 수 있었다. 각자의 자리 앞에 알루미늄 포일을 한 장 깔아 두고 마주 보는 곳에서 요리사가 직접 볶아 내 앞에 놔주는 형식이었다. 만날 면요리와 만두 요리만 먹다가 제대로 밥으로 식사를 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철판 요리 집을 종종 찾게 될 것 같았다. 좋은 거 소개해주셔서 고마워요!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군만두 집, 팔방운집. 난 팔방운집의 간장 소스와 매운 소스를 1:1로 섞어서 먹는 게 좋더라.(각자 취향대로 먹으면 된다)
花枝란 단어는 대왕 오징어튀김에서도 봤으니까 아마 오징어란 뜻일 테고, 대충 오징어 볼, 오징어로 만든 어묵인 것 같다. 맛도 식감도 역시나 어묵. 그릇이 아니라 일회용 용기에 나와 아쉬웠다.
한때 내 아침을 책임졌던 군찐만두와 또우짱. 이젠 또우짱만 먹고 있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또 먹는 것에 금전적인 부담을 느꼈다. 어차피 점심을 먹을 것이라면 아침은 패스하자. 군만두의 경우엔 기름져서 잘 안 먹게 되더라. 하지만 이쪽에서 근무하는 날의 70~80% 정도는 이 가게에 들러 또우짱을 사 마신다. 안 가는 날은 지각할 것 같거나 이미 다른 음료수가 있거나. 굳이 이곳에서 사는 이유는 1) 가는 길에 있으며 2) 귀여워서.
처음 가 본 금춘발. 중산 中山 역과 베이먼 北門 역 사이에 위치해있고, 닝샤 야시장 寧夏路夜市 근처다.
이날은 카레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여전히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여서 카레는 포기. 업무 채팅창에 메인 역 근처에 맛있는 가게를 추천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매니저님께서 이곳을 추천해주셨다. 120년 된 고깃집.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지 일본어 메뉴가 있었다. 그런데 메뉴에 오늘 먹고 싶었던 카레+게다가 토마토라니! 어머 이건 시켜야 해! 일본에서 덮밥 체인점에서 일할 때 즐겨 먹던 메뉴 중 하나가 토마토 카레였다. 일반 갈색 카레는 다소 무겁고 거의 95%의 확률로 장트러블이 오지만 토마토 카레는 전혀 무겁지 않고 장도 이상 없었다. 그때의 그 토마토 카레를 생각하고 시켰는데 토마토가 올려진 갈색 카레가 나왔다.
고기의 맛이 처음엔 다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당황스러운 맛이었는데 먹다 보니 익숙해졌다. 이런 고기도 있구나-라고 신기해하며 먹었다. 양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1)
대만의 카레는 조금 독특하다. 우리가 흔히 '일본 카레'라고 부르는 갈색 카레에 한국에서 흔히 먹는 '노란 카레'를 섞은 맛이 난다. 갈색 카레를 상상하고 먹으면 한국인들에겐 익숙한 맛이 치고 들어와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가 일본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한국의 본가에서는 노란 카레는 거의 먹지 않고 완전히 갈색 카레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거의 10년 만에 느껴본 한국 카레의 맛이었다.
일본에서 반년 정도 개인이 운영하는 카레 전문점에서 일한 적이 있어 카레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일본의 카레는 19세기 말 영국을 통해 들어왔으며, 일본의 1만 엔짜리 지폐의 모델인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1835.1.10~1901.2.3)가 처음으로 '카레 カレー'라는 단어를 소개했다고 한다. 한 세기 넘는 시간 동안 일본인들의 식생활에 '카레'라는 존재는 정말 깊이 스며들었다. 일본인들의 카레 사랑은 엄청나다. 거의 모든 탄수화물에 카레를 넣는 것 같다. 쌀밥과 함께 먹는 것이 카레라이스고, 카레 우동으로 우동면에도 카레를 부어 먹고, 심지어 빵 안에도 카레를 넣어 카레빵을 만들어 먹는다. 학교 친구들과 20여 명의 규모로 여름에 바닷가로 놀러 갔을 때에도 카레를 만들어 먹었다. 채소와 고기가 들어가고, 탄수화물과 함께 먹을 수 있고, 가장 쉽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라는 점이 일본에서 혼자 자취하면서 느낀 카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일반적으로 시판하는 고체 루는 매운 정도를 5개로 구분하여 판매하고 있어 구입 시 상자에 쓰여있는 매운 정도를 확인하고 구입하면 된다.(개인적으로는 레벨 3의 中辛을 주로 이용했다.)
일본에서는 그 갈색 카레를 '유럽풍 카레欧風カレー'라고 부른다. '일본 카레'라고 하면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선 왜 유럽 카레를 일본 카레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유럽에 가니 유럽에도 유럽 카레가 없다. 일본에는 일본 카레가 없고, 유럽에는 유럽 카레가 없고. 내가 살던 동네에서 그 갈색 카레를 먹으려면 일본 음식점에 가야 했다. 일본에서 '유럽풍 카레'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한 것은 약 40년 전, 「본디 ボンディ Bondy」라는 카레 전문점으로, 현재는 고인이 된 창업자가 프랑스 유학 시절 배운 데미그라 소스를 응용하여 카레를 개발하여 '유럽풍 카레'라고 이름을 붙였고, 이후에 이 카레를 따라 만들기 시작한 가게들이 이름 역시 그대로 '유럽풍 카레'라고 붙인 것이라고 한다.(내용 출처 http://president.jp/articles/-/15518?page=2 )
일본에선 '카레라이스의 카레 루와 밥을 섞어(비벼) 먹는가, 따로 먹는가'가 하나의 취향이기도 한데, 내 주변의 20~30대 여성들 대부분은 '따로 먹는다'라고 답했다. 이유는 모두가 '그릇이 더러워지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면 비벼 먹는 파인 내가 더럽게 먹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 되지만, 내가 어떻게 먹든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기 편한 대로 먹으면 된다. 밥 따로 루 따로 먹는 건 내 취향은 아니다.
-본디 ボンディ Bondy http://bondy.co.jp/web/index.html
-내가 일했던 토프카 トプカ Topca http://www.topca.co.jp/
개인적으로는 인도 카레의 매운 루와 갈색 카레의 루를 한 그릇에 반반 올려서 나오는 '마카나이 카레'를 가장 좋아했다. 여기 카레는 정말 맛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이케부쿠로의 분점으로, 선샤인시티 지하 1층에 있다. 이케부쿠로에 들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
2)
어쩌다 보니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거주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나 나름대로 그 나라들을 비교하고 있는 기준 몇 가지가 있어 소개해볼까 한다.(이중 일부는 여행 중에도 유심히 보게 된다)
-생활 물가: 생리대 가격, 계란과 우유, 커피 한 잔의 가격, 최저임금 1시간 시급으로 어느 정도의 식사가 가능한가
-복지: 휠체어 이용의 배리어 프리,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제도(소리 나는 횡단보도 신호등, 점자블록의 유무, 제대로 설치되었나), 지하철/버스 안의 노약자석 운영과 인식, 의료 공보험 시스템, 구급차 이용료(이건 어쩌다 보니 일본, 호주에서 경험하여 포함되게 된 항목)
-슈퍼, 음식점 등의 상점 운영 시간, 편의점의 유무 및 성격
-전반적인 노동 환경 및 조건, 서비스업 종사자에 대한 인식
-교통수단, 자전거에 관련한 교통법, 장치
-반려동물 관련 법, 사회적 인식
-술, 음주에 관한 법
-대학 입시 제도
-사회와 개인 생활의 속도(예를 들면 한국은 빨리빨리 정신으로 모든 게 다 빠르다. 유행도 빨리 퍼지고 빨리 끝나고.)
-생활 체육
-음식 문화, 먹는 문화, 전체적인 소비 성향 등등
저것들을 기준으로 찾아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저것들 위주로 눈에 들어온다'가 맞는 것 같다. 아마 해외에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각자의 기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배리어 프리 Barrier Free.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일본 생활 중이었다. 여태껏 살아보고, 여행한 나라 중에서 일본, 호주, 독일은 이 배리어 프리가 정말 잘 되어있다. 물론 세 나라 모두가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비교해보면 각각 부족한 부분, 특별히 잘 된 부분들은 찾을 수 있다.
호주의 경우(내가 산 지역은 멜버른 뿐이지만) 인도에서 길을 건너는 부분은 거의 모두 경사로다. 아닌 곳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실제 현실을 보여줄 수 있도록 호주에서 찍은 사진 중에서 골라봤다.
왼쪽 신호등 아래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순간에서도 경사로를 발견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동네인데 이곳은 캠버웰 Camberwell(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동네다)이라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존 1 지역이다. 이 사진들은 배리어 프리 등을 의식하고 찍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진들 속에서도 호주라는 나라의 도로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동경의 경우 인도가 없이 차도에 페인트로 표시해놓은 게 전부인 동네에서 살아서. 다만 건물에 들어갈 때의 경사로는 정말 잘 되어있다.
독일의 경우엔 모든 독일 도시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살았던 뒤셀도르프는 1층에 위치한 상점들은 모두 진입턱이 없다. 인도보다 조금 높게 위치해있다면 반드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대만은 비가 많이 오고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호주 멜버른에서도 보던 인도에 접한 건물 안쪽을 열린 복도로 개방한 회랑식 구조가 일반적이다. 체감으론 경사로 반 계단 반인 것 같다. 인도로 가면 경사로도 있지만 애초에 길 포장 자체가 상태가 좋지 않은 곳들이 많다. 낡은 건물들이 많은 나라고(대만은 건물의 겉모습은 낡았어도-습기 때문에 쉽게 낡는다- 내부는 겉보기와 다른 곳들이 많다) 보수가 필요한 인도는 공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아직은 휠체어든 유모차든 바퀴로 다니는 것은 불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어땠는가 생각해보면 인도의 경사로는 설치된 곳도 있지만 아닌 곳들도 많다. 고양시에서 살 때 자전거 도로가 인도와 함께 설치되어있거나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병행인 곳들이 있었는데, 길을 건널 때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으면 엉덩이 깨질 것 같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상점 주인이 개인적으로 경사로를 설치하자 민원이 들어와 관할 공무원이 철거를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http://www.ytn.co.kr/_ln/0103_201703021800065530 ) 민원과 공무원의 행정 모두에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기사였다.
페이스북 '이지 트립' 페이지의 동영상들을 보면 한국의 도로 사정이 얼마나 '함께 사는 사회'와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다. 요즘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독일에서 돌아와 대만으로 오기 전에 몇몇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커뮤니티 매핑'이라는 것을 접했다. 여러 가지 지도 작업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때 소개해주셨던 것은 '장애인 화장실' 조사였다. 학교를 비롯한 지역 사회와 협력하여 지도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작가가 미국 여행을 하며 미국의 장애인 시설을 경험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것이 있다.
-페이스북 이지 트립 https://www.facebook.com/easytripkr/
-페이스북 커뮤니티 매핑 https://www.facebook.com/communitymappingcenter
-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135화 미국 여행 2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59934&no=135&weekday=wed
3)
이런 기사를 읽었다. <남녀 61% "결혼 반드시 필요치는 않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8&aid=0003779477&lfrom=facebook
'△ 기혼 남성은 ‘결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63.2%로 전체 응답군 중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 기혼 여성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1.4%에 달해 결혼에 대한 뚜렷한 시각차를 보여줬다.'
즉, '결혼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질문에 기혼 남성의 63.2%는 "그렇다(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답했고 기혼 여성의 71.4%는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뭐 이런 동상이몽이 다 있나.
기혼 여성 친구들은 상당수가 내게 조언한다. '결혼해서 좋긴 하지만 안 할 수 있으면 하지 말라. 하더라도 최대한 늦게 하라.'. 일단 이성애자의 경우, 남성들이 바라는 배우자상과 여성들이 바라는 배우자상이 일치하지 않고, 여성은 선택적 비혼이 늘어나는 것 같다. 당장 우리 엄마만 해도 '한국에선 결혼하면 여자가 잃는 게 너무 많아.'라고 한다.(참고로 엄마는 '하려면 최대한 늦게 해라, 너랑은 한국에서 결혼해 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결혼하려면 외국에서 해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국제결혼 찬성'이라는 입장이다.)
결혼도 출산도 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미래사회에서 세금 낼 인구가 걱정되어 출산율을 올리고 싶으면 남녀 모두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사회를 만들면 되는 거고. 그러나 당장 서 있기도 힘든 임산부들이 대중교통에서, 사회에서 배려받지도 못하는 세상 아닌가.
4)
살아본 적 없는 파리, 도대체 파리의 무엇이 나를 그리도 강하게 끌어당긴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파리에 무엇을 기대하였을까. 내가 그리는 파리 생활은 무엇일까.
동시에 '파리'를 지금의 '타이베이'로 치환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나는 타이베이에 무엇을 기대하였고 내가 그린 타이베이 생활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생각한 대로 원하던 대로 뜻하던 대로ㅡ 되고 있는가. 2.5개월을 채웠다. 최근 한 달 동안 내게 내게 던지는 질문은 줄곧 '이대로 좋은가'였고 나는 매번 '아니'라고 답했다.
사는 게 마음대로 안 될 때 종종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이건 그곳이 마음의 고향이라는 듯인 걸까, 친구들의 존재 자체가 나를 끌어들이는 걸까, 단순히 그리움과 재미가 있을을 거란 기대감인 걸까 혹은 일본으로 돌아가 사는 것이 쉬운 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5)
집주인이 내게 기독교 전도를 시작했다. "너는 지저스를 믿을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붸뤼 스마트하고 붸뤼 인텔리전트한 나조차도 믿을 수밖에 없었거든. 지저스를 부정할 근거가 없고 오히려 증명하면 할수록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거야'식으로 나온다. 관심 없다고 하자 '그럼 넌 뭐에 관심이 있는데? 네가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면 왜 나라마다 다른 풍경인지 생각해봤어?"식의 '모든 것은 신이 만들었기 때문'으로 끌고 가고 있다. 자긴 힘들 때 신에게 구원받았다며 내게 성경 구절을 읽어주며 급기야 나더러 읽어보란다.
기독교 전도는 국적 불문인가. 그렇겠지. 성경에 쓰여있다고 하니.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절친끼리도 안 하는 게 종교 얘기다. 남을 힘들게, 곤란하게 만들고서 천당 가길 바라는 건 무슨 심보인 걸까. 귀가하자 말을 걸더니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이 성경책을 꺼내 들고 전도하기 시작해서 놀랐다. 일본에서 살았던 건 이런 점이 편했다. 도를 믿냐고 묻지도 않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소리도 안 한다. 기독교 포교를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내 종교관(무교)도 취존 좀 해주세요, 제발.
6)
한국의 치킨 프랜차이즈 같은 존재가 대만에선 쩐쭈나이차 프랜차이즈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애초에 수요가 많아 시장 자체가 커 프랜차이즈 지점, 개업이 모두 용이한 사업 시장이라는 점이 같다고 생각했다.
7)
메인 역과 중산 역 사이에 위치한 중산 지하 쇼핑가에서 30분에 300 원하는 마사지를 받았다. 매번 느끼지만 마사지해주시는 분이 내 어깨와 싸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시술사분의 승부욕과 빡침이 손 힘에서 느껴진다. 엉덩이 근육까지 눌러주시는데 죽는 줄 알았다. 허리를 꾹꾹 눌러주셨는데 몇 주 동안 나를 괴롭히던 허리 통증도 사라졌고,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아프고 피곤하고 졸리던 것도 사라지고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 직후에 중산 지하 쇼핑가가 전체 공사에 들어가면서 그 마사지샵은 사라졌다...
8)
25일에 오랜 친구 Y 씨가 첫 아이를 출산했다.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까.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좀 더 화목하고 건강한 세상이길 바란다. 네 앞에 아름다운 꽃길만 있기를.
9)
나의 가장 큰 적은 '아무것도하기싫어병'인 것 같다. 너무 쉽게 재발하지만, 재발하면 쉽게 낫지 않는다. 원인은 답 없는 무기력을 유발하는 '생활의 만족도가 낮아 바꾸고 싶은데 상황이 어려울 때' 혹은 '몸 상태가 안 좋아 숨만 쉬면서 쉬고 싶음'인 것 같은데, 즉 약도 없다. 혼자 진단하고 혼자 처방을 내렸다.
투잡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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