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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pr 10. 2023

교사라는 역할 아래

미약하게 부모의 무게를 체험한다. 

  나는 원래 잘 우는 아이였다. 스물 여덟이라면 아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거나 내가 아이시절, 나는 언제나 톡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터뜨릴만큼 감수성이 차올라있는 상태였다. 한동안은 울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은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눈물을 보이는 일은 나를 전부 열어 가장 약한 곳을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졌기에 어디에선가 눈물이 나려고 한다면 참았다가 집에 가서 울곤 했다. 


  요즘은 부쩍 자주 운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 예전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게 되었다. 나는 찰랑찰랑 차오르는 감수성을 마음껏 내버려둔다. 아무래도 나의 감정의 폭은 남들보다 두 배로 넓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1만큼 기뻐한다면 나는 그 일에 2만큼 기뻐하고, 1만큼 슬퍼한다면 2만큼 슬퍼한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농도가 짙다. 


  며칠 전 우리 반 학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나 그렇듯 우리 반에도 유난히 내성적인 학생이 하나 있다. 내게 아직 많은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 한 마디, 보고서 한 줄 쓰는 것을 보면 이 학생이 어떤 태도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보인다. 굉장히 성실하고 똘똘한 아이여서 내성적이기는 해도 금방 적응할 수 있을거라 생각을 했기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3월 한 달이 다 가던 어느 날, 그 학생이 점심 급식을 먹지 않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작에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점심을 먹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어찌 버텼을까 생각하니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학생을 불러 먼저 이런 저런 이유를 물어보고 상담을 했다. 그리고 학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먼저 학교에서 자세히 살피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아이와 상담 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세히 말씀을 드렸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3월 한 달 동안 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낌새에 걱정을 계속 하고 계셨다고 했다. 가정에서도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해보았으나 3월이 다 가도록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단다. 그런데 바쁜 학기 초에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나 된 아이의 교우관계에 대한 문제로 전화를 드리는게 망설여져 연락을 못 주셨다고. 그리고 3월 한 달동안 급식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는 점점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누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아이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다른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채로 내 마음에 들어와 나도 눈물이 났다. 낳았다고 해서 전부를 알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라지만,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제3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무게. 자식을 낳은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교사라는 역할 아래 아주 미약하게 그 무게를 체험한다. 함께 눈물 흘림으로써, 그 아이가 매일 급식을 잘 먹는지 매일 열심히 살핌으로써. 


  다행히도 어머니의 눈물과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바로 그 날 자리를 바꾸며 만난 짝꿍과 친해져 매일 밥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조회 시간에 들어갈 때 마다 아이에게 오늘 점심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를 건넨다. 마니또 활동도 해보고, 반에 보드 게임도 넣어주고, 야외수업도 해보고 그러는 중이다. 점심시간에 학교를 산책하다 친구와 산책하고 있는 그 아이를 마주친 날, 나는 마음으로 눈물을 한 번 더 흘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예뻐 걱정이 날아가는 기쁨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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