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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Feb 20. 2024

밝은 회색빛 풍경(12)

눈앞의 파도

 어두운 하늘, 오늘은 비가 내린다. 본격적으로 봄을 준비하는 땅을 위한 비일까? 최근에 집을 이사했다. 정말로 창문으로 바다가 보이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기존에 살던 집이 계약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퇴거 의사를 미리 밝혀둔 상태였고 집을 알아봤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집은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 작은 아파트의 매물이 나타났고 이사를 올 수 있게 되었다.


여름이도 창문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바다와 하늘이 신기하고 재밌는지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들을 여름이와 나는 구경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꿈꾸던 일들이 이곳으로 오면서 하나씩 진행이 되는 모습이 때론 너무나 신기하다. 오늘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비가 오니 파도가 조금은 무섭게 부서지고 있었다. 나에겐 그마저도 만지고 싶은 바다였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커피를 내려놓고 책상에 항상 올라와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두꺼운 책 두께에 겁부터 먹었던 책이지만, 궁금한 책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그저 완독을 하는 것을 목표로 구매한 책이었다. 한 장, 한 장 읽어갔다. 읽는 중간마다 작가가 그냥 적은 소설 안에서의 진행되는 이야기일 수 있는 부분들이 나에겐 다르게 다가오는 몇몇 구절들이 있었다. 그런 구절들을 인덱스로 하나씩 표시하며 책을 읽었다.


잠깐 주변을 돌아보니 여름이는 따뜻한 자리를 찾아 잠이 들어있었고, 여전히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잠깐 멈춘듯했다. 이때다 싶던 나는 러닝화를 신고 작은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날씨 탓에 오늘은 바다에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도 바람은 크게 불지 않아 바다 주변을 걷다, 뛰다 반복했다. 그러다 젖은 모래 탓에 쭈그려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큰 파도가 내 방향으로 몰려오다 가까이 올 때쯤은 부서져 버렸다. 계속해서 반복했다. 문득 큰 파도를 보는 순간,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 불안감에 힘들어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저 머릿속 생각일 뿐이던 저 큰 파도가 언젠가 자연스럽게 무너져 버릴 파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왜 그 파도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을까. 부서지는 파도를 보니 한편으로 마음이 뻥 뚫리는 듯 한 상쾌함을 느꼈다. 한동안 파도를 계속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류소리, 22년 08월 06일 11시 38분 음섬포구, oil on canvas, 17.9x25.8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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