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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국 Nov 29. 2024

20. 미디어는 육아의 ‘악’인가?

영상으로 학습하는 것

한창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라는 책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역사의식을 길러주고 싶었다. 마침 아이들도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 빠져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매일 하나씩 역사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들 : 오늘은 말목 자른 김유신~ 보고 싶어!
아빠 : 그래 이거 보자!

(영상 감상 후)

딸 : 그래서 김유신이 누구야?
아빠 : 아까 영상에 나왔는데?
아들, 딸 : 뭔지 잘 모르겠어!

결국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재구성한 김유신의 말목 자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간중간 질문이 나오면 대답해 주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단어를 교정하여 설명했다. 아이들의 이해 속도에 맞춰서 설명했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이토록 생활에 스며든 세대는 없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영상과 함께 살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눕혀놓은 채로 영상을 시청하는 환경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영어 동요를 영상으로 틀어놓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를 재우기 위해 틀어놓은 '백색 소음' 또한 하나의 자극이다. 나는 이런 세대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오히려 '영상'이라는 매체 자체의 효율성이 뛰어날 때도 많다.


많은 영상으로 인해 어른들의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교육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이 즐겨보는 Number blocks라는 시리즈 영상은 아이들의 수 개념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하나가 빠지고 하나가 더해지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수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도록 한다. 그뿐만 아니다. ABC나 파닉스는 영상을 통해서 익히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시각적인 자극과 청각적인 자극의 조합. 그리고 재미를 가미하여 반복하여 공부하고 싶은 콘텐츠. 어쩌면 우리는 다시 한번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혁명을 맞이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WHO에서는 스마트폰 규제를 연일 외치고 있다. 실제로 미국 플로리다주, 영국, 프랑스 등은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영상 매체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며 제한해야 한다고 한다. 인문 육아답게 우리는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 안 좋다고 하니 안 좋은가 보다 휩쓸리지 않고 명확히 원인을 찾고 싶다. 왜 영상이 좋지 않을까?



최성애, 조벽의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에서는 시종일관 '애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착은 아이를 정서적 금수저로 만들어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굳건한 아이가 된다. 지식적이거나 지능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애착이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이 아이들의 애착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밥을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쪽에 애착이 생기진 않았다. 놀아주고 교감하고 눈을 마주치는 보호자에게 더 많은 애착이 생겼다. 애착이 생기기 위해서는 교감이 필수다.


미디어를 보는 아이와 부모의 교감은 안녕할까? 아이는 멍하니 영상을 보고 있고 부모는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시간이 아깝다. 미디어 그 자체의 악영향은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와 소통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이렇게 흘려보내는 것이 아깝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여신'에서 고등학생 2명이 만든 그림책이 나온다. 그림책은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는 내용이다. 나는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



또한, 미디어의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 위 예화와 같이 아이들이 휘리릭 지나가는 화면에 현혹된다. 기억에 남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억에 남더라도 영상의 '내용' 보다는 '장면'을 기억한다. 따라서 영상으로 학습하는 것은 길게 보면 효율성이 많이 떨어진다.


나는 부모와 놀이를 하면서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을 읽으면서 찬찬히 찾아가고 싶다. 책 속에 찾는 내용이 없더라도 그 찾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영상 속 지식들을 넣는 것은 중요치 않다. 아이들이 답을 찾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고명환의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에서 고명환 작가는 책을 아주 천천히 사색하며 읽는다고 하였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책을 덮고 오랫동안 그 문장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된다. 무엇이든지 천천히 생각하는 것. 박웅현 작가가 말했듯이 사물과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시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싶다.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은 아이의 사유를 막고 시선의 머무름을 방해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태권도장에서는 매달 아이들의 활동 장면을 영상으로 제작한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 나오는지 기다리는 재미가 크다. 이번달 영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둘이서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태권도 수업시간에 책 읽는 것을 바라진 않는다. 뛰어 놀라고 보낸 태권도에서 목적에 맞는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스스로 앉아서 단 둘이서만 책을 보는 모습을 보며, 책을 하나의 재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꼈다. 대화, 책, 스스로 만든 놀이 등도 즐거움이라는 것을 안다.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에 반응하듯 미디어가 있으면 보거나 즐긴다. 그러나 시간이 되면 스스로 멈추고 책이나 놀이 등 다른 재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책의 즐거움에 반응할 수 있는 안테나가 생긴 것이다.



미디어는 효과적인 학습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회비용이 크다. 미디어를 활용하여 잃어버리는 시간이 많다. 미디어의 속도는 아이들 개개인에 맞춰줄 만큼 친절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미디어보다는 놀이와 책을 통한 학습을 선호한다. 단순히 ‘미디어가 좋지 않다더라’라는 생각보다는 이유와 철학을 가지고 미디어를 활용하고 싶다. 미디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미디어를 지배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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