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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국 Dec 04. 2024

21. 왜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되나?

제일 소중한 것과 시간의 공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내 기조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나에게 질문하였다.

“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는 거야?”

이 얼마나 철학적인 질문인가?

“그야 당연히..”라는 뻔한 대답을 하려다가 한번 더 깊게 생각해 봤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답변은

“세상에서 나 자신이 제일 소중해. ㅇㅇ에겐 ㅇㅇ이가 제일 소중하고. 다른 친구에겐 그 친구 자신이 제일 소중해. 우리는 모두 소중한 사람이니 서로 소중히 여기는 자신을 아껴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모두 시간을 함께 쓰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ㅇㅇ이의 시간, 그리고 아빠의 시간은 똑같아. 서로 함께 쓰는 시간을 행복하게 해 주자. 그 사람들에게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안겨줘서 시간을 낭비하게 하진 말자! “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집단 속으로 들어간다. 요즘은 첫 돌을 넘어서부터 집단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집단에서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이에 따라 부모나 교사들은 하나하나 ‘행동교정’을 하려고 한다. 아이의 행동을 보고 하나하나 지적한다. 이런 건 나쁜 거야. 이건 안 좋은 거야. 라며 아이들의 행동을 지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 이유를 이해할까? 이유를 이해하지 않으면 행동이 근본적으로 교정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행동을 교정해 줄 수 없다. 애초에 그 교정이 올바른 것인지 가치 판단이 가능한 것인가? 규칙의 기준도 사람이 정한 것이다. 나의 우연한 경험이 만나 규칙이 되었을 뿐이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서 주인공은 ‘교양’을 중시한다. 그러나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우연히 잘할 수 있었던 서너 가지 능력과 수양만을 정당화하면서 하나의 ‘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교양’이라는 것도 허상이다. 우연히 주인공이 겪은 몇몇 일들로 인해 만들어진 삶의 규칙일 뿐이다. 이러한 규칙을 아이에게 ‘교정’한다는 의미로 강요한다. 나는 아이가 각각 행동의 교정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그에 맞는 본인만의 규율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위 바람이 내가 아이에게 ’ 내가 제일 소중해 ‘와 ‘시간 공유’의 개념을 제시한 이유다. 먼저, 내가 제일 소중하다는 개념은 얼핏 이기적이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제일 소중하다. 나의 몸, 나의 삶, 나의 정신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은 당연한 행위다. 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제일 소중하다는 마음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소중해야 ’ 남‘도 소중하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와 선생님들은 지시로 남을 배려하는 ’ 행동‘만 모방하게 한다. 진심으로 남을 위한 행위를 하려면 나 자신부터 사랑해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준 타인을 생각하게 한다. 톨스토이의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절름발이 아이를 키우는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를 키우는 여인은 아이들을 사랑한다. 주변인의 사랑으로 큰 아이는 그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나‘를 있게 한 사람들. 부모님, 친척, 그리고 심지어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여인까지. 모두가 소중한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한 사람들이다. 이런 감사의 마음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이 솟아난다. 나눠줘야지. 양보해야지.라는 이유 없는 행동 지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시간은 모두 똑같이 흐른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들이 이 개념을 알았으면 좋겠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 이반은 자신의 시간만을 소중히 생각했다. 가족의 시간, 직장 동료의 시간은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승진만을 생각했다. 직장 동료들의 시간을 행복하지 않은 시간으로 만들었다. 가족들의 시간을 외로운 시간으로 만들었다. 결국 그는 마지막에 후회하고 삶을 마감하였다. 이반 일리치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행복했을까? 그가 죽고 난 후 아무도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지 않았다. 주변인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하고 챙겨야 하는 물질들을 챙겼다. 이반 일리치 자신조차도 마지막 용서를 구하기 전까진 행복하지 못했다.


식당에서 아이가 시끄럽게 할 때면

“다른 사람들의 조용하고 싶은 시간을 빼앗는 거야. 다 같이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줄래? “

싸우고 있는 첫째와 둘째에게는

“동생도 오빠도 지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있어.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줄래?”

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스스로 조용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한다. 남에게 피해 주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타인을 사랑하여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행위의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다.



철학자들은 항상 본질에 집중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말들에는 본질에 대한 말들이 많다. 한 문장으로 인생을 통찰하는 문장들이 많다. 본질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육아에도 본질이 있다. 오늘 이야기한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배려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에게 본질을 알려주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그 본질이 ‘소중한 것’과 ‘시간 공유’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을 잘 간직하여 아이가 사랑의 가치를 느끼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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