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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국 Nov 27. 2024

19. 무심히 던지는 부모의 말

말 조심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집안 곳곳에 아이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벗어 놓은 옷, 먹다만 초콜릿, 흘리고 다닌 음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엄마는 꼭 범인을 묻는다.

"이거 누가 그랬지?"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대답을 우물쭈물 한다.

엄마 : 아니, 그냥 누가 했는지 궁금해서.

아이들의 언어 파악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만 엄마는 "누가 했어?"라고 말한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이거 누가 그랬지?"라는 말이 가볍지 않다. 그냥 누가 했는지 궁금했다는 엄마의 말은 공허하다.


누구나 말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생각한다. 언어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 겸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에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원래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그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기 말이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 이 말로 인해서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문구를 접하는 순간 나는 내 말이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했다. 내 말에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뼈가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신부 세르게이에서는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자 하는 신부가 등장한다. 신부는 수많은 유혹들을 노력으로 극복하였다. 심지어 여자의 꾐에는 손가락을 잘라 대응하였다. 이 일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인파의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그도 자신이 받는 존경을 즐겼다. 타인을 위하는 행동을 했으나 내면은 달랐던 것이다. 결국 그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고 그 일로 고행의 길로 떠난다. 이야기는 그가 고행 중 진정 타인을 위한 내면을 가지게 되면서 끝이 난다. 그렇게 위대한 성인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내면에는 다른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결국 그를 타락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말속에도 내면이 있다. 그 내면을 아무리 숨겨도 결국에는 말과 행동에 묻어난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경청한다.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경우만 아니라면 일단 듣는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말은 영향력이 크다. 새로운 지식, 정해진 규칙 등이 부모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하나하나 듣고 기억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말 그 자체 뿐 아니라 표정, 말투, 분위기까지 모두 파악한다. 어른들보다 강한 집중력으로. 이로 인해서 아이들은 부모의 속뜻을 파악하는 훈련이 되어있다. 위 예화와 같이


"이거 누가 그랬지?"


라는 말 하나로도 아이들은 겁을 먹는다. "나를 혼내려고 묻는 거구나"라고 생각하여 핑계를 생각한다. 아이들의 말속 뼈 발골 능력은 이토록 뛰어나다. 지금까지 우리는 말에 뼈가 항상 있다는 사실과 아이들의 발골 능력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말조심’이다.



말을 아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돌려서 이야기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나도 아이에게 직설적으로 퍼붓기보다 순화하여 이야기하는 편을 택하겠다. 다만, 우리의 말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 인지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던지는 말이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말 한마디도 반복되면 한 권의 책이 된다. 한 권의 책은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다. 한 단어 한 단어 매번 살펴보며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정성을 들였으면 한다.


카프카의 “선고”에서는 친구에게 자신의 사업 번창을 편지로 알릴지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친구의 기분을 고려하여 일부러 시답잖은 이야기만 편지에 담는다. 친구는 아마 그의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배려하는 내면에서 나오는 말은 존중이 묻어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말할 때 이런 편지를 쓰고 싶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배려하는 말. 존중이 묻어나는 말. 그런 말들을 선별하여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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