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린이집에는 ‘킹콩블록’이라는 블록을 만드는 시간이 있다. 아이들의 성취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년 대회를 연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아이는 1등(금상)을 희망한다.
“아빠! 나는 금상을 받고 싶어! 금상은 1등이거든!”
1등을 좋아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1등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 근데...... “
뻔한 달램을 하려던 차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1등이 왜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인간의 본능을 직시하는 편이다. 직시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나가고 싶다. 강제로 감정을 숨기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본능을 직시하면 놀라운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가 ‘교양적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본능들도 곰곰이 살펴봐야 할 때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구와 불만족을 유심히 살폈다. 그 관찰을 통해 그는 우리의 의지를 조절하여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불편한 생각을 마주하였다. 그로 인해 고통은 욕구와 불만족의 계속되는 등장으로 생겨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아 행복론을 이룩하였다. 그가 위대해진 이유가 여기 있다. 모두가 시선을 피하는 곳을직시하고 사색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피하고자 한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외치고 싶어 한다. 쇼펜하우어는 진리를 그렇게 덮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용기를 오늘의 주제인 ‘대결’에 대입하고 싶다. 누구나 1등을 원한다. 그러나 보모들은 꼭 1등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이가 순위에만 집착하여 과정의 즐거움을 놓칠까 봐 우려한다. 과연 1등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어른들도 마음속 깊이 1등을 원한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너는 내 마음속 1등이야’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기분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본능을 무시하고 아이에게 ‘1등은 중요한 것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가 순위 경쟁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가 뭘까? 순위에만 집착하여 슬퍼하는 모습을 달래주기 위함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1등을 해서 좋아하고 있을 때 ‘1등은 중요한 게 아니야’라며 찬물을 끼얹지는 않는다. 아이가 패배로 슬퍼하고 있을 때 ‘1등은 중요한 게 아니란다’ 라며 ‘위로’를 해준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위로를 주는 말인지 생각해보고 싶다.
아이는 이기고 싶어서 울었다. 아이가 추구하는 가치는 ‘승리‘였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에게 ’ 네가 추구하는 그 가치는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위로한다. 과연 위로가 될까? 대학에 너무나 가고 싶었던 낙방한 학생에게 ‘대학은 중요한 게 아니란다.’라는 말을 한다면 어떨까? 위로가 아니라 ‘소중히 여긴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이럴 때 나는 ‘1등 못해서 속상했구나?’라고 공감해 주고 싶다.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다면 아이가 추구하던 가치가 무엇이든 소중하다. 아이가 선택한 가치를 존중해 주자.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아이에게 ‘에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말하여 걸음을 멈추게 하고 싶지는 않다.
경쟁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은 언제나 경쟁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을 막을 순 없다. 경쟁의 결과가 순위다. 무작정순위를 부정하진 말자. 순위를 매기는 행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순위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내적 동기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의 수행을 칭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아이 스스로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가늠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건전한 경쟁을 한다. 달리기, 줄넘기 등 자신의 능력을 겨루는 경쟁을 하며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나, 잘못된 가치로 경쟁하는 경우가 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은 남들 보기에 부자 같아 보이는 물건을 구입한다. 다른 가정과 일종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사치로 경쟁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이 밖에도 빨리 먹기로 경쟁하는 경우, 함께 해야 하는 일을 협력 대신 경쟁으로 처리하는 경우 등. 아무리 아이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해도 이를 허용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경쟁을 하되, 올바른 가치를 위해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에는 많은 문화들이 등장한다. 그중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문화는 신전에서 여자를 사는 것이 당연했던 문화다. 여자들이 신전에 모여있고 남자들은 돈을 주고 여자를 데려간다. 결국 여자들 중 가장 외모가 떨어지는 여자가 마지막에 남는다. 여자들은 경쟁한다. 부당한 대우에도 먼저 선택받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 문화에서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인식,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있었다면 어떨까? 그런 문화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면 어떨까? 이 경쟁이 침범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의식을 가지면 좋겠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첫째가 내게 말했다.
”아빠! 1등은 중요한 게 아니래! “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이에게 말했다.
“근데, 1등 하고 싶지 않아? 그건 당연한 거야.”
첫째는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끄덕했다. 누구나 승리하고 싶다. 이는 당연한 본능이니 인정해 주자. 아이가 승리하면 축하해 주고 아이가 패배하면 위로해 주자. 아이의 승리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부정하진 말자. 다만,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돕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경쟁을 부정하기보다 올바른 경쟁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