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형국 Oct 30. 2024

11.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이유

과정을 즐기는 아이

승품심사를 마치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난히 밝은 우리 아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물었다.

아빠 : 고생 많이 했구나 열심히 연습한 거 마음껏 보여주고 왔나 보네?

아들 : 아빠! 너무 재미있었어!

아빠 : 응? 재미있었어? 잘해서 기분 좋은 게 아니었어?

아들 : 응! 그냥 재미있었어!! 잘한 지는 모르겠어 그냥 재미있었어!

아빠 : 그게 더 중요해! 재미있게 했으면 됐어!


다른 아이들의 잔뜩 긴장한 표정에 비하여 우리 아이는 시종일관 재미있어 죽겠어!라는 표정으로 심사에 임했다.

내면에 가득 찬 즐거움이 아이에게 과정 그 자체를 즐기게 해 주어 힘든 훈련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이다.(실제로 승품심사를 준비하다가 태권도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아이에게 합격 또는 불합격. 검은색이 섞인 띠 하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웠다.


관장님과 대화를 나눠 보니 평소 수업 중에도 아이들은 충분히 과정을 즐기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

오늘은 칭찬이나 꾸중. 다시 말해 외부적 요인을 전혀 주지 않았음에도 과정을 즐기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칭찬 스티커, 홈알바(집안일을 하고 용돈을 주는 것) 등의 외부적인 보상, 또는 일상생활에서 흔히들 말할 수 있는


"~~~ 하면 ~~ 하게 해 줄게~" 또는 "~~~ 하지 않으면 ~~ 못한다?"


라는 상과 벌에 대한 약속. 모두가 '결과중심적 상벌'이다. 구차하게 변명을 하고 싶진 않지만 오해하는 경우가 생길까 덧붙이자면 여기서 '결과중심적 상벌'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그냥 결과에 따라 상벌을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행위가 옳다 그르다는 의미는 없다. 나도 홈알바 정도는 이용하여서 아이에게 노동의 가치와 돈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외의 결과에 집중한 상벌은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는 한스라는 장래가 총망한 학생이 어떻게 무너지는가가 비친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 뛰어난 두각을 보였으나 본인이 원한 것은 아니었다. 온 마을의 분위기와 기대가 본인의 명문 학교 진학에 몰려 있었으며 한스는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것인 줄 착각하면서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내는 결과로만 칭찬을 받던 그는 결과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주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심각한 스트레스로 몸까지 야윈다.


한스는 왜 힘들었을까? 마을 사람들이나 부모들은 한스의 '결과'에만 집중하였다. 한스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묻는 이는 없었다. 적응을 못하는 한스를 보고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 그가 낸 결과에 희비를 드러내어 한스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가 한스에게 공부 어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뭐야? 뭘 배우고 싶어?라는 질문을 했었더라면, 그는 또 다른 행복의 길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시지프스 신화가 있다. 무거운 돌을 산 위로 굴리고 정상에 닿을 때마다 다시 굴러 떨어져서 올려야 하는 너무나 유명한 신화이다. 흔히들 '헛된 노력'이나 '끝없는 고난'을 표현하고 싶을 때 쓰는 신화이다. 그러나 알베르 까뮈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시지프스의 상황을 인간 존재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그가 돌을 굴리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행복한 시지프스"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중시한 힘이다. 많은 육아 전문가가 '아이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세요!'라고 하지만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생각보다 중요한 '과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결과에 대한 상벌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 행복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



외부적인 상벌이 초래하는 문제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감시가 없을 땐 잘못된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덕적이지 않아서' 또는 '타인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지 않고 '부모에게 혼나서'라고 인지하기 때문이다. (마치 엄마의 감시가 없는 틈을 타 몰래 답안지를 보고 숙제를 하던 내 모습 같긴 하다..) 다시 말해, 컴퓨터처럼 입력된 대로 행동하는 것일 뿐 스스로 생각해서 주체적인 결정에 의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시키는 방법은 한 가지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단 한 가지 방법 외에는 아이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하도록 만들 수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아이도 시지프스처럼 '끝없는 고난'에 들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음 글에는 아이에게 내적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몇 가지 내가 고찰한 방법을 나누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여 천재라고 불리는(최근 한강 작가님이 언급해서 더 유명해진)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했던 말을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찬혁 : 재미있는 거면 다해요 재미없으면 진짜 하기 싫어하고."

이전 10화 10. 친절한 부모는 항상 옳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