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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May 11. 2022

단상 7

1.

바다를 좋아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 콕 집을 수는 없다. 다만, 지금부터 ‘바다’라고 지칭할 사람의 영향이 적잖다. 누군가를 이름이 아닌 무엇으로 지칭하는 것은 그것이 그에 대해서 나름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간 그를 얼마간 회상하기에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고, 하여간 나는 그러기로 했다.     


2.

나는 바다 곁에 있을 때 글을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래 적었다. 가만히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척 없던 영감이 별안간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참 요상하다는 생각을 거듭했는데 바다 덕분에 손에 넣은 영감이 꼭 바다와 연관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어렸을 적 꿨던 꿈, 철 지난 영화 때로는 한 번쯤 나를 울게 했던 누군가가 언어의 모습을 띤 채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바다가 옆에 있을 때 내 머릿속을 곧잘 드나들었다.     


바다는 옆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나를 줄곧 바라보았다. 턱을 괴어 보기도 하고, 키보드 두드리는 모습을 따라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고는 실없이 웃기도 했다. 나는 종종 바다를 주인공으로 글을 적어 선물해줬는데 그럴 때마다 바다는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다.     


3.

최근에는 바다도 파도도 없는 곳에서 바다가 불쑥 떠오르는 때가 종종 있었다. 잠자코 누워있다가 별안간 머리를 받치 바다의 무릎 촉감이 느껴졌다던가, 눈을 감았을 적에 얼굴 곳곳을 어루만지 손길이 선연해졌던 것이 원인이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했던 것들이 새로운 한철에 다다르면 지난 한철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불쑥 찾아왔다. 그런 날이면 인내고 뭐고   없이 눈시울이 잔뜩 붉어지고는 했다.      


4.

지난 생의 많은 부분이 다시 돌아와 몸 구석구석을 찌르고 파내었다. 그들은 그새 날카롭게 다져진 듯했다.      

나는 그 행위의 주체가 과거의 나라는 것을 조금은 짐작하게 되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하면 안 되는 것들,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다는 사실 또한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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