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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May 12. 2022

단상 8

1.

작업실 앞에서 행인들을 붙잡고 커피를 나눴다. 이 원두는 초콜릿과 설탕 맛을 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 녀석은 바닐라와 패션후르츠 맛을 내고요, 하는 식의 설명을 나열하고는 직접 커피를 내려주는 것이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나눔. 그 과정에서 나는 꽤 오래 곱씹어볼 만한 맥락 하나를 끌어안게 되었다.     


흥미를 가진 이들은 하나같이 유사한 물음을 건넸다. 광고인가요, 무슨 업체인가요, 어디 회사에서 나오셨나요. 단순히 나누기 위해 주고받는 물건을 자연스레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질문에 직면할 때마다 상품의 사전적 정의가 ‘사고파는 물품’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주고받는 것과 사고파는 것. 그 둘 사이의 거리감을 얼마간 가늠해보기도 했다.     


2.

물건이나 일련의 행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돈이 일정 부분 관여되는 현상은 자본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어쩌면 일리 있다고 여긴다. 정치와 연관된 일에 매 순간 경제지표가 간섭되는 것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화폐라는 관념을 대입한다, 라고 요즈음의 나는 짐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만들어낸 (쉽사리 보이지 않는) 어떠한 증상들이 있다는 것도, 그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조금은 인정할 줄 알게 되었다.     

3.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감히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요 며칠 실감하고 있다.     


4.

커피와 자본, 이유 없는 나눔과 광고, 인간과 관념, 그런 것들을 관통하는 맥락을 마주한 뒤 나는 사회라는 관념에 대해서, 내가 직시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서 얼마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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