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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ug 13. 2022

단상 24 우리

지구는 일 년에 두어 번 달과 태양 사이에 놓인다. 그때 달은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붉게 상기되고, 잠시간 제빛을 잃는다.      


나는 그것을 목격했을 때 왜인지 애달파졌다. 별안간 입술 위로 스친 미묘한 감촉 때문이었던가. 그 뒤에 따라붙은 기억 때문이었던가.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때 그리움 비슷한 감정이 자꾸 상기됐던 것 같다. 며칠간 흐릿한 장면을 쫓아 동네를 돌아다녔던 걸 고려해보면 그건 정말 그리움일지도 몰랐다.     


사방이 캄캄했던 논길과 드문드문 놓였던 가로등과 눈물에 젖어있던 입술, 아니 사실은 여태껏 나열한 것들을 뒤로하고, 선연하게 떠올릴  있는 미묘한 감촉만으로도 나는  기억을 묘사할  있다.  기억 덕분에 무너지려다가도 다시 견뎌낸 일들이 제법 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날을 떠올리면 나를 시달리게 만들던 걱정들이 무안해질 정도로 덤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가끔은 크기를 가늠할  없는 무력감이 집요하게 따라붙는 바람에 그날의 나를 자책하면서 돌아간다면, 하고 중얼거리거나 기회가 생긴다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거듭한  있었다. 누가 보면 궁상떤다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내 주위를 위성처럼 돌았다. 두 다리는 부지런하게, 시선은 나에게 꼿꼿이 고정한 채였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모종의 결심 때문에 벽을 쌓고 있었고, 상당 부분 모난 심경으로 지내던 와중이라 그랬는지 구석구석을 숨겼다. 의도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처 낼 수 있는 상태였던 거지. 게다가 그때는 마음에 둔 사람에게서 무관심을 받고, 모진 말을 듣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사람을 얼마나 깊이 묻을 수 있는지를 몰랐다. 고백하자면 그날, 내가 애달프다고 여기는 그날에, 나는 그 사람에게 좀 모질게 굴었다. 그 사람, 얼마간 제빛을 잃었겠지. 어쩌면 그 얼마간이 이제껏 산 날보다 길게 느껴져서 내 이름은 그 사람에게 잊고 싶은 이름이 되었을지도 몰랐다.(그게 아니라면 나는 인생의 기회를 얻은 것처럼 기뻐하겠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생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지구의 바다에서는 달과 태양의 힘으로 유발된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다. 하루에 두 번씩 물이 찼다가 빠졌다가 하는 그 일을 이 행성은 보란 듯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다가 기억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인지 지구와 달의 모양새가 낯설지 않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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