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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Jun 26. 2023

공무원 퇴사 후, 한가하냐고요?

공무원 퇴사 후 크게 달라진 것 1가지 - 시간



퇴사를 하면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이 있다. 그토록 바라왔던 시간.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정해진 틀이 없다는 걸 뜻하기도 하는데, 틀이 없다는 것은 처참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틀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했고, 메신저로 떨어지는 업무들, 112 신고를 처리해야 했고, 쉬고 싶은 날에는 팀장, 과장의 결재를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틀이 있었기 때문에 작게는 내 하루가, 기관이, 크게는 국가가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를 억압받는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이 사실은 내가 규칙 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게끔 꽤 많은 힘을 보태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퇴사를 하고 나면 이 자잘한 지탱력들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지탱력을 잃은 만큼 자유에 대한 책임에 조금 더 신중한 마음을 쏟아야 한다.



무엇을 칠하느냐에 따라 선명해진다


캔버스 : 자, 여기에 그려진 이 선이 오늘의 시간이야


이음 : 뭐야, 이미 다 그려져 있네?


캔버스 : 어어.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나 똑같으니까. 24시간이라는 틀이 있는 거지. 여기서 중요한 건 너가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떤 색으로 칠할 것이냐. 이걸 잘 생각해봐야 해.


이음 : 오늘 하루 잘 보내란 말을 뭘 그렇게 어렵게 해. (귀찮다는 듯이 물감을 칠하려고 한다)



캔버스 : 잠깐만 진짜 중요한 사실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그려놓은 작품을 보고 감탄만 해. 

“아, 나도 저렇게 잘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한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잘 안 해. 너는 지금 퇴사하고 너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배로 늘어났잖아. 너도 남들이 그려놓은 작품만 보고 감탄할 건 아니지? 24시간을 진짜 촘촘하게 보내야 해.

'주어진 시간 안에서 너가 어떤 색깔을 칠할 것인지'

그것부터 잘 생각해 봐. 너가 하루하루 잘 쌓은 색깔은 곧 너만의 작품이 될 거야.


퇴사를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흐리멍덩해지는 삶이 싫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내는 시간들은 내가 선명해져야만 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중심이었다. 중심이 잡혀야 무엇을 하든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첫 번째 중심, 루틴


퇴사준비를 할 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시공간에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일을 할 것. 하지만 시공간에 제약이 없다는 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걸 뜻했고 무소속이라는 것은 내가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는 걸 뜻했다. 타이트하게 시간을 보내야만 내 성장도 경제도 유지될 수 있었다. 지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시간 활용이 필요했다.


시작하기 전에 끝낼 것 


보통 기상시간은 4시 50분. 자는 동안 입속에 생긴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하는 양치, 양치 후 몸에서 빠져나간 수분감을 채워 줄 따뜻한 물, 각성효과를 위해 우려낸 녹차. 그림을 그릴 때 온습도가 중요하듯 내 몸의 온습도도 잘 맞춰준다. 10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면 5시. 바로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의 일을 시작한다.


새벽시간에는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 일도, 갑자기 잡힐 약속도 없다. 9시까지 오늘 목표해 둔 일정량의 일을 하나씩 해내면 하루 시작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사실 직장에서도 집중해서 일을 한다면 4~5시간이면 업무를 끝낼 수 있었다. 그 시간 안에 업무를 끝낼 수 없는 이유는 모두 각자의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요청한 서류를 누군가 제출하지 않으면 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그 누군가는 아마 자신의 일이 더 바빴을 것이다. 그 이후, 팀과장의 결재를 받기 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걸려오는 민원전화도 무시할 수 없다. 민원인은 자기의 민원이 제일 급할지도. 이렇게 업무가 밀리고 밀리다 보면 오늘의 업무는 내일로 밀린다. 영향을 받는 요소들을 모두 없애려면 내가 조금 더 일찍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9시가 되기 전에 오늘 할 일의 절반 이상을 끝내고 나면 오늘 하루의 주도 권은 내가 쥐고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두 번째 중심, 마음


하루의 틀을 잘 잡고 시작했다면 틀이 무너지지 않을 마음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어떤 일이든 마음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마음의 근력을 유지하는 수단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읽고 쓸 때 마음에 근력이 붙는 편이었다. 읽고 쓰는 것은 분명 직장에 다닐 때도 수없이 했었던 것 같은데 쌓이는 것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직장에 다닐 때에 읽는 것은 매뉴얼이었고 쓰는 것은 보고서였다. 내가 읽은 매뉴얼들은 절차적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읽기였고 내가 쓴 보고서들은 근거를 남기기 위한 보고서에 지나지 않았다. 늘 현상유지를 위해 읽기와 쓰기를 해 왔다면 이제는 확장을 위한 읽기와 쓰기를 해야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성장의 기반은 튼튼한 마음이다. 그래서 조금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물론, 시간을 주도하는 만큼 규칙은 있었다.


먼저, 무언가를 읽을 때는 늘 머리를 깨부수자.


언제든 깨지는 것은 쉬웠다. 직장에서 멘탈이 깨지는 것도 쉬웠고, 민원인한테 깨지는 것도 쉬웠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깨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삶을 바꾸는 책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책들을 찾아 읽어야 했다. 운이 좋게도 그런 책들을 만나면 늘 뒷수습이 필요했다. 직장인일 때는 그 뒷수습이 동기들끼리 모여하는 한탄이었고, 퇴근하고 집어드는 맥주 한 잔이었다. 산산조각 난 읽기에 대한 뒷수습은? 쓰기였다.


뒷수습을 할 때는, 조금 더 선명한 마음으로.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산산조각 난 파편들을 새롭게 가공하는 것과 같았다. 정성 들인 가공은 내 생각을 늘 확장해 주곤 했는데,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이 일기를 쓰는 것과는 달랐다. 짜임새가 있어야 했고, 내 생각이 드러나야만 했다. 누군가가 봤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쓰기는 늘 고통스럽다. 고통스러운 만큼 내 마음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삶의 명도가 조금 더 짙어지는 느낌이 든다.



세 번째 중심, 육체



하루의 루틴도 잡히고, 마음도 튼튼해지고 나면 이제 필요한 것은 체력이다. 내 삶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문제는 어김없이 몸에 있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몸을 잘 움직일 때 끝까지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직장에 다닐 때는 늘 몸을 혹사시켰다. 오후근무 해야 한다며 커피를 입에 달고 살기도 했었고, 고기를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는다며 채소는 피해왔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찌뿌둥하다며 운동도 했지만 고장 난 몸에 기름만 덧칠할 뿐이었다. 매일 마셨던 커피는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아플 지경까지 이르렀고, 육식 위주의 식습관은 앉아있으면 힘들 정도의 묵직한 뱃살을 만들어냈다. 어리석은 몸이었지만 직장의 시스템 덕분에 삐그덕 거리며 굴러갈 수 있었다. 직장에 속해있지 않은 몸이 되었으니 변화가 필요했다.


클린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


단순했다. 아침만이라도 직접 갈아 만든 채소과일주스를 마시고 사 먹는 음식들을 자제했을 때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계획해 둔 것들을 끝냈을 때에는 어김없이 운동을 시작한다. 잦은 야식으로 쪘던 뱃살이 조금씩 덜어지고, 코어가 잡히는 느낌이 든다. 몸에서 독소가 빠져나가고 코어힘이 점점 강해질 때 오늘 굴러갔던 바퀴는 내일도 같은 속도로 굴러갈 수 있었다.



계획적인 퇴사였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늘 바쁘지만 그저 바쁘기만 한 것은 직장인일 때와 별다를 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제대로 활용해야 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시간은 중심을 잡는 시간이었다. 물론 한 달 뒤, 6개월 뒤, 1년 뒤에 내가 보내는 시간의 흐름은 바뀔 수도 있다. 늘 제자리는 아닐 테니까. 당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필요에 따라 시간을 쌓다 보면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https://youtu.be/t_dSPNYMx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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