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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Oct 15. 2023

젊은 공무원들이 3년만에 퇴사하는 진짜 이유

숱한 실망을 마주한 순간들 - 우스꽝스러운 칭찬 


"굿, 굿, 그 동작이죠! 잘하고 있어요!"


발레 선생님이 외쳤다. 기존에 배우던 발레 선생님은 아니다. 기존 선생님은 학생들의 입시로 인해 오지 못하셨고, 그 선생님을 대신한 오늘의 선생님이다. 모든 배움이 그렇듯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스타일도 동작도 조금씩은 다르다. 오늘은 그 낯선 배움에 적응해야만 했다. 무엇이든 배우면 척척 배우는 타인들과는 달리, 나는 어떤 동작을 배우든 이상한 동작으로 배움을 주는 자를 축축 처지게 만들었다. 새로운 선생님에게 배운 새로운 동작은 특히나 더 어그러진 모습이었다. 분명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선생님 동작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데도 내 몸은 초단위로 삐걱거렸다. 비발레인인 내가 봐도 그 동작은 분명 틀렸고,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오늘의 발레 선생님은 그 동작을 향해 규칙적 박수와 우렁찬 목소리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푸드덕푸드덕 애쓰는 수강생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랬는지, 자신의 수강생이기 아니기에 애정이 덜 가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이 보낸 찬사는 잠시나마 나를 한 마리의 우아한 백조로 만들어주었다. 


잘하지 못해도 더 잘할 수 있다고 박수 쳐주는 것. 절망의 늪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매일 희망에 가득 찬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한다.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나를 더욱더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는 늘 절망만 가득했고, 희망 속에서조차도 늘 절망을 볼 수밖에 없었던 곳이 있었다. 


3년간 몸담았던 조직이 그랬다. 


잘하지 못한 일에 책임을 묻는 것은 괜찮았다. 빠르게 수습하고, 상사의 피드백에 따라 시정하면 될 일이었다. 처음이 다 그렇듯 고쳐나가면서 성장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문제없이 일을 처리했을 때였다. 제대로 처리한 일임에도 누군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원을 맞아야 했다. 혹은 아주 잘했으니 이것도 해보라며 더 많은 책임을 떠넘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면서 성장하면 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계는 아주 오래전에 종말 했음을 고하듯 수많은 절망의 순간들을 목도했다. 바로 적절한 보상, 균형에 관한 일이었다. 먼저, 공무원 조직에서 보상이란 근평을 잘 받고, 표창을 잘 쌓아서 궁극적으로는 승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상은 제대로 된 업무처리가 아닌 정치질, 학연, 지연, 달콤한 아부 등에 의해 결정됐다. 이런 것들에 능하지 못한 젊은 공무원은 아무리 일을 제대로 한다고 한들 늘 승진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다음, 균형에 관한 일이다. 1년에 2번 있는 인사시즌만 되면 불균형을 균형으로 바로잡는 일은 늘 실패했고, 균형이 불균형으로 깨져버리는 일은 자주 달성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승진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그가 맡은 업무들은 타인들에게 배분됐다. 혹은 누군가가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두가 그를 기피하는 탓에 그는 늘 책임이 덜한 자리에 배치되었고 그에게 배분되지 않은 책임은 타인이 떠맡아야만 했다. 보상도 균형도 실패한 젊은 공무원들은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해야만 했다. 손뼉 쳐주는 관객이 아무도 없었다. 


같은 월급을 받고도 누군가는 더 많은 책임, 더 어려운 일을 맡고 누군가는 더 적은 책임, 더 쉬운 일을 맡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발레 선생님이 외쳤던 것처럼 엉망으로 해낸 동작에 찬사를 보내달라는 것 또한 아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동작을 해냈을 때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다음 줄타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균형감 있는 줄만이라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작을 해냈을 때면 어김없이 어깨에 더 많은 모래주머니를 적재했다. 적재된 모래주머니는 결국 그 줄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잘 동여매는데 자주 어려움을 겪었다. 더 하면 나아질 것이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마음. 숱한 절망을 목도함에도 분명 다시 희망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나는 그런 마음을 지키고 싶어 도망쳤다.




이 동작 아닌 것 같은데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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