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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Jul 31. 2023

퇴사 후 첫 위기가 닥쳤다

위기를 극복해 내는 5가지 방법



6월 1일 퇴사 후,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다. 심지어 퇴사 기념으로 쉬러 간 양양에서조차 손에서 일을 뗄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통상적으로 일컫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쩐지 그런 일임에도 마음속에는 늘 불안이 도사렸다.


'오늘 쉬면 내일 달려야 해'


때문에 이따금씩 약속이 잡히면 그 몇 시간이 조금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혹은 러닝머신 위에서 드라마나 예능을 볼 때, 자기 전에 누워서 다음 주에 만들 콘텐츠를 찾을 때 충분히 휴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처럼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왠지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거의 두 달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안심하던 순간 결국 위기가 닥치고 말았다.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근육통에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오한이 와서 전기장판을 틀고 누워있었음에도  몸의 한기가 가시질 않았다.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인가? 생각했지만 기침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몸에 차질이 생기니 일이 자꾸만 밀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예져서 어떤 글자를 적어 내려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차라리 필사를 하자며 책을 집어 들었지만 몽롱한 상태라 안 하느니만 못했다.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쳐 들어도 글자가 동동 떠다니기만 했다. 웬만한 것들은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어림도 없었다. 의지로 내 몸을 떠받들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약을 죽도록 싫어함에도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아픔에 병원을 찾았다. 결국, 결과는 코로냐 양성.


오히려 경찰생활할 때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났다. 그런데도 지난 3년간 한 번도 걸린 적 없었는데.. 면역만큼은 자신 있다고 자부했는데 퇴사하고 나서 걸리니까 조금 억울했다. 다른 소소한 이유들은 다 접어두고, 바로


대체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면 대신 글을 써줄 사람도, 영상을 만들어줄 사람도 없다. 내 삶을 쌓겠다며 호기롭게 퇴사했는데 그 다짐이 틀렸음을 반증하듯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유가 주어진 만큼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은 그저 일이 아닌 '나'부터 책임지는 것.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늘 주의하고 휴식을 취해줘야 했던 것이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필요한 것들을 재정의해야만 했다.


달마다 내는 건보료, 연마다 내는 세금, 일하는 시간, 체력을 위한 운동까지. 틈틈이 이런 것들을 챙기면서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지니려면 휴식에도 책임을 져야 했다. 나가서 비싼 음식을 사 먹으면 될까? 사고 싶었던 옷을 사면 조금 보상이 될까? 밖에서 비싼 음식을 먹는다 한들 갔던 음식점에 또 방문하는 일은 손에 꼽았다. 쇼핑도 마찬가지였다. 옷을 사면 그때만 좋을 뿐 오히려 돌아다니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오로지 본능적 끌림에 의한 것들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단정해질 수 있는 것들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오감이 살아나는 것들. 약을 먹고 몸이 조금 괜찮아질 때쯤 작정하고 쉬기로 했다.




1. '느리게' 차, 과일에 집중하기


모닝루틴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꼭 지키는 이유가 있다면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시간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무언가를 계속 입에 넣으면서 일을 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아침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하지만 쉬는 날의 아침만큼은 시간을 조금 느리게 써보는 것이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던 차세트를 꺼내 차를 우려내고, 과일도 조금 더 이쁜 접시에 담아낸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정갈해지니 하루의 시작이 단정해진 느낌이 든다. 차를 마시고 나면 한동안 시끄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잦아들고, 어쩐지 온몸 구석구석 따뜻한 기운이 전해진다. 결국 매일 바빴던 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음을 알아챈다.



2. 새로운 작가의 책 한 권 '하루 만에' 다 읽기


평소에 틈틈이 책을 읽어도 하루에 읽는 양은 한정되어 있다. 다른 해야 할 것들을 하려면 하루종일 책만 붙들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간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읽고 싶었던 책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싶은 과자를 한아름 사 와서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었다. 미룰 필요 있나 싶어 책 한 권을 읽기로 했다. 책을 굳이 '하루 만에' 다 읽기로 한 이유는 온전히 다른 사람의 세계에 빠지고 싶기도 했고,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접해보지 않았던 세계를 접하게 되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어쩌면 해결되지 않는 커다란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어쩌면 내가 걱정하는 문제들은 해결될 수도 있는 범위에 속한다고 말이다.



3. 건강한음식 '직접' 만들어 먹기


경찰생활할 때는 점심이라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며 늘 기름진 음식을 먹었고, 액상과당이 가득한 라떼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건강을 야금야금 갉아먹는지도 모르고 짠맛에, 단맛에, 자극적인 맛에 늘 중독되어 있었다. 때문에 퇴사 후에는 건강한 식단으로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는데, 어쩌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날에는 내 몸에 어김없이 경고등이 켜졌다. 자주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이따금씩 바깥 음식을 사 먹었다. 쉬는 날만큼은 간단하게라도 직접 해 먹기로 했다. 이왕이면 건강한 음식들로. 한 끼를 차려내는데 시간을 쏟는 일은 내 몸에 대한 온전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걸 인지시켜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4. '끌리는' 영화 보기


원래는 엘리멘탈을 보고 싶었는데 몸의 상태가 상태인 만큼 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격리 해제라지만 콜록거리면서 영화를 보는 것도, 누군가에게 옮기는 것도 민폐였다. 영화를 안 본 지 꽤 되기도 했고 만든 음식을 느릿느릿 먹으면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창작을 업으로 삼을 때에는 자칫 내 세계에만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다른 창작물을 보는 것도 부지런히 해야 한다. 평소에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고 나면 머리가 복잡해지기보다는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만 같다. 휴식할 때는 '뇌'를 쉬어주라고 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 계속 일 생각밖에 나지 않으니 차라리 다른 것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런 측면에서 평소에 찾지 않았던 분위기의 영화는 꽤 유용했다.



5. '쾌적하게' 잠들기


잠자리에 들기 전, 몇 달 전 여행 갔을 때 쓰고 남았던 입욕제가 생각났다. 진짜 쉬고 싶을 때 써먹어야지 하고 아껴뒀었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을 줄이야. 입욕제를 쓰기 전에는 그 효용이 의아했다. 욕조에 차오르는 거품은 그저 분위기 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욕실에서 반신욕을 하게 되면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데 그걸 없애주는데 제격이다. 입욕제를 풀어놓고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면 몽실몽실 거품이 일어난다. 심신이 안정되는 향은 물론이고 부드러운 거품이 온몸을 감싸면 긴장되어 있던 근육들이 서서히 이완된다. 이 순간만큼은 흩어져있던 오감이 모두 한 공간에 집중되기 때문에 쉽게 다른 생각이 찾아올 수 없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구석구석 씻어냈다면, 조금 널브러져 있던 침구를 정리하고 기분 좋은 향의 스프레이를 뿌려준다. 수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신중하게 고른 향으로.




쉬는 날의 효용


딱히 쉬는 날이 정해져 있는 날이 없다면, 자체적으로 빨간 날을 만들어줘야만 했다. 제때제때 쉬어주지 않으면 정말 바쁠 때 크게 무너진다. 물론 쉬지 않아서 걸린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제때 쉬어주지 않으면 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자유를 얻은 만큼 책임질 것들은 생각보다 더 늘어난지도 몰랐다. 그저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다.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면, 쉬는 날을 갖는다는 건 훨씬 더 쓸모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https://youtu.be/oORfQV_tZ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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