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했던 30대는 아닐지라도
나는 솔로를 보다 보면 내 또래의 출연자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만 같았던 결혼 예능. 이제는 본격적으로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내가 아직 자리잡지 못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출연자들의 자기소개를 보면 내 생각이 한참 틀렸음을 지적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쏘지 않은 화살에 혼자 맞고 아파했다. 대부분 5년 이상의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어 꽤나 자리를 잡은 것 같고, 능숙한 운전으로 자동차도 척척 끌고, 심지어는 옷 입는 걸 봐도 어른스럽다. 물론 가장 좋은 걸 말하고, 보여주고, 가져올 테지만.. 나에게는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없었다. 실력 쌓기는 이제 시작이고, 자동차가 없어 운전은 순찰차가 마지막이며, 옷은 아직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는 게 더 좋다. 누군가는 내가 상상했던 30대 어른의 모습을 살아내고 있었다. 퇴사를 하기 전까지는 상상했던 30대 어른의 모습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경찰이라는 직업이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같아."
"울타리요?"
"친구들이 아빠, 엄마 직업 경찰이에요. 하면 그 반응이 있대. 신기하고, 놀랍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결혼한 선배들은 자주 말했다. 그래도 경찰이라는 직업이 부모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나 역시 경찰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어디서든 직업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다는 거였다. 퇴사를 하기 전에 가장 놓기 힘들었던 건 바로 타이틀이었다. 타이틀보다 중요한 건 나의 성장이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아주 잠깐은 상상했던 30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어른인 척할 수 있던 직업은 이제 없다. 지금 당장 돈을 벌고 있는 것은 동업이기에 오로지 내 힘으로 이룬 것이라 할 수도 없다. 더 이상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물론 경찰을 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만족스럽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사회초년생이 된 것만 같았다. 내가 상상했던 30대의 어른이 아니라면, 다시 40대를 상상하고 그걸 실현시키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내가 꿈꾸는 40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이라서, 욕심을 부리고 있는 일은 글쓰기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때문에 그저 쓰고 싶은 상태에 놓여있을 뿐이라서,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내고 써낸 상태로 이동시켜 안도할 뿐이다. 그렇게 완성해 낸 글은 매일 구제불능이었다. 머리를 쥐어짜 내며 썼는데 내가 쓴 글은 다시 읽고 싶지 않았다.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고, 소설에 입문한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으며, 아직 수많은 작가들에 대해 섭렵하지도 못했으면서 잘 쓰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우습지만 말이다. 글방을 해도 어딘가 허전함이 있었고, 글쓰기 강의를 봐도 와닿지 않았다. 대학원에 가면 나아질까 생각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어떤 것도 당장 내 글을 구해내긴 어려워 보였다. 글방이, 강의가, 대학원이 아무리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한들 그것에 손을 뻗칠 힘이 없는 것 같았다. 그 힘이 왜 없는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어딘이 대답했다.
"너는 너무 이성애적인 사랑에만 몰두해 있잖아. 남녀가 하는 연애가 만들어진 깊고 깊은 맥락을 짚어봐. 인류의 역사로 관심을 확장해야 돼. 공부해야 돼. 우주와 이 사회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사랑얘기도 너무 단순해지는 거야. 읽다 보면 금방 질리는 칙릿 소설이 돼. 아무리 잘 써봤자 브리짓 존스의 일기인 거야." -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中
공부 없이 쓴 글은 마치 재료가 부족해서 당면만으로 만들어낸 잡채 같았다. 당근, 시금치, 버섯, 소고기가 몽땅 빠져있어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고, 잘못 먹었다가는 체할 것 같기도 했다.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깊은 공부가 없으니 내 글에는 글맛이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한 재료들을 준비해 놓고 글을 써야 했다. 직접 농사를 짓든, 마트에 가서 사 오든, 누군가에게 빌려오든.
"예전에는 잡채에 채소 들어간 게 그렇게 싫어서 당면만 골라 먹었었는데 지금은 당면만 먹으면 좀 느끼해."
"잡채를 당면만 먹으면 무슨 맛으로 먹어. 뭐든 다 어우러져야 맛있는 거야."
"그런가.. 그럼 왜 옛날에는 당면만 먹어도 맛있었지?"
"당면만 있는 잡채를 팔면 팔리겠니. 뭐든 조화가 중요한 거야. 잘 어우러져야 사람들이 또 찾지"
그렇다. 글쓰기에도, 20대에도 준비된 재료가 없었다.
상상했던 30대를 맞이하지 못했던 것은 20대 때 충분한 재료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재료가 부족한 채로 맛있는 요리를 하려고 하니 엉망이 되는 거였다. 엉망이 된 요리는 마치 방황하는 30대의 어른과 같았다. 완성은 됐는데 어딘가 깊은 맛은 안나는, 또다시 찾고 싶지는 않은. 반면, 20대에 재료를 잘 준비해 둔 이들은 30대가 되어서 깊은 맛의 요리를 만들 수 있었던 거다. 내가 꿈꾸는 미래가 있다면 혹은 되고자 하는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면 그에 마땅한 상상값을 지불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