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보다 앞섰던 불안
환풍기 수리공이었던 한 남자. 스타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애절함은 2010년의 가을을 더 애처롭게 했다. 마치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당시 그의 노래를 듣던 한 고3 소녀는 마음이 자주 동했다. 소녀의 마음에 불을 지른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살짝 거만한 표정, 삐딱한 자세로 기울여 쓴 모자. 어딘가 조금 불량해 보이는 그는 본능적으로 느껴졌어를 외치며 또 고3 소녀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슈퍼스타 k2에 나왔던 허각 그리고 강승윤. 그들의 인생역전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었다.
철없던 그 소녀는 고3 나름의 애절함과 철없는 본능을 품은 채 수능 일주일을 남겨두고 노래방으로 향한다. 대학에 대한 간절함이 없던지라 수능을 앞두고 노래방에 간다는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은 없던 그 소녀는 결국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다. 자유가 대학생의 특권이라도 되는 듯 늘 루틴 없는 생활을 반복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11시가 되어야 일어났고,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노래방에 가 3-4시간씩 노래를 부르고 돌아왔다. 게으른 희망을 품었고, 대충 닦은 실력으로 슈퍼스타 k5에 지원했다. 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졌던 2차 예선. 수많은 참가자들을 보고 그 소녀는 몹시 주눅 들었다.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연습하는 모습은 희망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무언가는 희망을 지배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소녀는 바비킴의 '사랑, 그놈...'을 불렀고, 예상했던 대로 떨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냉소적인 심사위원의 표정과 함께, 다른 참가자가 품고 있던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한 채로.
그 후 그 소녀는 이렇다 할 큰 목표 없이 대학생활을 했다. 규칙적인 생활은 딱히 없었다. 남들 하는 것처럼 그저 대학공부를 뒤처지지 않게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해외여행을 즐기며 대학생활을 했다. 수년이 흘러 그 소녀는 경찰관이 되기도 했고,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경찰을 퇴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오전 4시~5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한다.
삶의 변화는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옷을 갈아입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름을 지독히 보내다가 바로 혹독한 겨울을 겪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변화의 유형 중 철저히 전자였다. 내가 보낸 20대는 너무나도 평범했고, 고요했고, 심지어는 허무맹랑하기도 했다. 너 좀 열심히 살라며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고, 주위에 미친 듯이 열심히 사는 사람도 딱히 없었다. 나 또한 그럴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듯 조금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 잘 살아보자는 다짐은 조금이나마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욕망과 다짐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으면서 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만들었다.
그 변화는 우연히도 늘 혼자 보낸 시간에서 조금씩 선명해졌다. 폭풍처럼 어떠한 각성에 의해 휘몰아쳤다기보다 가랑비 오듯 서서히 젖어들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혼자 있는 시간의 내가 좋았다. 그 시간의 기분이나 감정을 정확하게 형언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냥 좋았다.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한 채 혼자 있는 시간이 삶의 일부가 된 채 수년이 흘렀고, 그러다 또 우연히 '너 이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던 거야'라고 써낸 글을 만났다.
시간의 진짜 주인은 고독이다. 잘 빚은 고독이 모든 떠들썩함 위에 군림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걷기만 한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부터 다른 것들의 이름을 빌려 나의 시간을 채울 수 있다. 오, 나는 자의식에 기분 좋게 젖어 있고 그 자의식은 오직 관객 없는 온전한 시간 속에서 나를 긍정하게 하는 도구로써만 쓰인다. 하루 종일 걷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샌드위치에 커피를 마시고, 또다시 나와서 걷고, 구경하고. 그렇게 여행이 채워진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거울을 본다.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는 어느 때보다 완벽하고 피부는 맑다. 누구라도 만나서 나를 보여주고 싶지만 이 아름다움은 비공개다. 억울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약속이 잡힌다. 이상하게 입고 나간다. 공을 들인 것이 실수다. 억울하다. 혼자 있을 때 난 더 예쁜데. 똑같이 혼자 거리를 걷고, 지쳐서 집에 돌아오면 얼굴이 뽀얗다. 그런 과정의 반복이다. 나만 아는 엉성한 시간 속에 고독이라는 시간이 쌓이면.
어쩌면 우리는 혼자 있을 때에 가장 어여쁘다. 혼자 있을 때, 상대를 의식하지 않을 때 최대치의 매력과 실천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다.
<우정도둑-유지혜> 中
그렇다. 고독은 내가 최대치로 아름다워질 수 있는 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 자아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드러났다. 책을 읽는 나, 운동하는 나, 공부하는 나, 글을 쓰는 나. 이런 모습들이 쌓일 때마다 조금씩 기대했던 것 같다. 고독의 시간을 성실히 쌓으면, 더 멋있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불쑥 찾아오는 희망. 하지만 그 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혼자만의 시간은 희망보다는 불안에 가까웠다.
-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기쁨보다 모르는 것이 이토록 많다는 실망감
- 글을 쓰면 쓸수록 나아진다기보다 더 잘 쓰는 작가를 발견하고 이내 겪게 되는 좌절감
- 직장을 다니면 다닐수록 정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오는 불안의 감정들은 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아주 형편없이. 내 의무는 불안의 감정들이 한없이 들이차지 않도록 비워는 것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한이 있더라도. 어제 들이찼던 불안을 오늘 덜어내고, 오늘 마주한 불안을 내일 지워내는 방식으로.
어쩌면 나는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가졌는지도 모른다. 불안을 때때로 타인에게 털어놓을 때면, 가끔은 그 불안의 형태가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 타인의 영혼 없는 격려로 성장가능성을 품고 있던 불안이 화르르 타버릴 수도. "지금 나이면 조금 늦지 않았나.." 타인이 부리는 오지랖으로 불안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터져 버릴 수도.
10년 전, 슈퍼스타 k5 예선이 있었던 월드컵 경기장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마 각 참가자들이 품고 있던 '불안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허무맹랑한 희망만을 쫒지도, 맹목적인 열정만을 품지도 않았다. 남들보다 더 개성 있게, 더 잘 뛰어나게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불안감이 먼저였을 것이다. 반면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불안감이 없었기 때문에 희망도, 열정도 품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그 이후에 목표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불안을 먼저 마주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독은 하나의 과정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보다는 더 대중적이고 선명한 조명이 비친다. 조명이 비쳤을 때 과정이 빈약하면 부끄러운 결과가 나온다. 듬성듬성 구멍이 난 고독이 모두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얼마나 충실했는지 잘 아는 것은 본인이다. 충실했던 이는 가려져 있던 시간만큼 보상받는다. 성실한 고독의 역사를 여러 사람에게 들키는 것을 우리는 성공이라 부르기도 한다. 결국 우리에게는 더 많은 기다림, 더 많은 비밀이 필요하다. 판단은 쉽고 기다림은 짧은 우리 시대에. 숨겨진 꾸준한 노력이란 얼마나 희귀한가. 조용히 겸손한 그 고독은 더없이 우아하다.
<우정도둑-유지혜> 中
https://youtu.be/xGhmKAY0Sts?si=bEkY4tve2K5bZQ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