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장 루이를 만났을 때
정말 눈이 먼 것 같았어요.
웃기겠지만,
진짜 왕자님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은 내가 너무 과장한다고 했지만
저는 그 애들이
질투하는 거라고 여길 정도였어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어느새 3년이 지났어요.
물론 아직도 그를 사랑하지만
자꾸 그의 사소한 결점들을
발견하게 돼요.
장 루이는 자기 방식대로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못 견뎌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점점 더 날카로워져서 그를 비난하게 되고요.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가 왜 짜증을 부리는지 이해가 안 돼.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걸.'
그의 말이 맞아요.
그에게 반했을 땐 그런 모습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에게 화를 낼 때마다
제 사랑이 식어 버린 게 아닌가 싶어 두렵고 괜히 미안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보이지 않았던
그의 단점들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사랑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모든 걸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은
점점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커집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사랑의 끝을 의심합니다.
그런데 이는 사랑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즉 사랑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그냥 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지요.
다만 열정적인 사랑만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는 우리의 편견이
사랑의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사랑은 열정적으로 '빠지는' 단계에서
사랑을 '하는' 단계를 지나
사랑에 '머무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세계로부터 분리된 채
마치 하나가 된듯한 황홀한 순간을
온몸으로 즐깁니다.
그러다 사랑을 '하는' 단계에 이르면
두 연인이
서로 에너지를 맞추어 가면서
그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머무는' 단계에서는
두 사람이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 속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즉 둘만의 열정적인 사랑에서
세상과 연결된 차분한 사랑으로
탈바꿈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뜨거움이 줄 수 없었던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흐르게 되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를
상상하는 대로가 아니라
실제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무수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고자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랑은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화됩니다.
그는 자신의 결핍과
부족한 부분을 마주하는 일을
전만큼 힘들어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증거이자
그에게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찬사입니다.
p.76
<파리의 심리학 카페>_모드 르안 지음/김미정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