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이 건넨 인사

계절의 변화

by S Hale

비가 그친 오후, 어스름한 저녁이 드리우고

나는 잠시 볼일을 보러 바깥에 나와 걸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길엔 벚꽃이 만개해 있었고, 길을 지날 때마다 흩날리는 꽃잎들이 봄의 절정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봄비가 지나가고 나니, 벚꽃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영산홍이 알록달록 피어났다.

나무들은 푸른 잎을 활짝 펼치고 있었고, 비에 젖은 흙과 풀은 짙은 향기를 내뿜었다. 그 풀냄새가 마치 말하는 것 같았다. “나, 살아 있어.” 세상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예전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젖고, 춥고, 축축한 날. 하지만 이제는, 비 오는 날이 싫지 않다. 세상이 조용해지고, 비가 그친 뒤엔 마치 샤워를 마친 것처럼 맑고 상쾌한 공기가 감돈다. 특히 봄비는 그렇다.

겨울비는 차가워서 마음까지 스미고, 여름비는 끈적해서 숨이 막히지만, 봄비는 다르다. 살짝 스며들고, 잔잔히 적시고, 그리고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

지금 이 계절, 지나가는 풍경, 풀의 냄새, 촉촉한 공기 모두가 말하고 있다. 살아 있는 시간 속을 걷고 있다고.

그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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