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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처음으로 입 밖으로 “외롭다”고 말했다

외로움은 인생의 상수다

by 시루

살면서 외롭단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주변의 친구들은 연인이 없어서 외롭다고 말하고는 했지만, 그 말에 공감하지는 않았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안 외로운 것도 아니지 않나,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연결되지 못할 때 더 고독했다.



반면에 내 감정은 ‘심심하다’에 가까웠다. 이거하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던가, 데이트로만 가야 하는 명소를 가고 싶다던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전부 보고하고 싶어질 때라던가 그런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원하는 거라면 친구나 가족이나 누군가로 대체할 수 있었으므로 (특별한 게 아니라면. 크리스마스에 친구와 데이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건 금방 사라지는 감정이었다.



그러다 올해, 처음으로 입 밖으로 “외롭다”는 말이 나왔다. 혼잣말도 아니었다. 친구들 앞에서 육성으로 뱉었다. 과자봉지를 뜯어내듯 너무 자연스러웠다. 자존심도 세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을 아는 친구들은 모두 당황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해놓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만큼 처절한 외로움에서 나온 말이었다.



“굳이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나는 좋아하는 건 꽤나 몰입해서 한다. 좋아하는 걸 계속 찾아내고, 한번 찾아내면 마음이 풀릴 때까지 해보는 데다, 이렇게 하다 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낙관적인 성향이라 그렇다. 나의 전 연인들 혹은 친구들은 이런 삶에 늘 응원을 보냈으나, 때로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은 더 했다. 그들은 응원보다는 왜 그렇게 사냐는 볼멘소리 혹은 비아냥이 더 많았으니까.



유명한 자기 계발서에서는 ‘세상의 비난을 듣지 말고 묵묵히 나아가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되면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게 된다. 숲으로 들어가 혼자 살 것이 아니라면, 태풍에 흔들리는 잔가지처럼 이리저리 내 마음은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속으로는 ”흥 그래도 할거야“라고 하면서도, 내심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왜 응원해주지 않냐고 주변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그러자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누군가의 지독한 열정은 때로는 상대방에게 ‘너는 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라는 공격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도 있어.


너에게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한들, 그들이 너를 응원해 주는 마음이 진심이었다고 한들, 그건 원래 그런 거야“



그때부터 나는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기 위해. 그럼에도 나를 향한 사랑으로 응원을 해주려는 괴로움을 막기 위해.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나처럼 산다. 그건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아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하나의 소망이 생겼는데, 내 열정이 공격이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거다.



요즘 나는 적게 먹거나 아침의 긴 공복을 즐긴다. 다이어트만의 문제는 아니고, 위가 조금 비워져 있을 때의 그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집중도 더 잘된다. 배가 부르면 먹을 때는 좋지만, 다 먹고 나면 오히려 덜 행복하다. 사람은 ‘앞으로 더 채워 넣을 수 있는 상태’ 일 때 더 안정적인 것이 아닐까. 내 마음도 그럴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건, 내가 비로소 비워졌다는 말이고, 앞으로 진정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일 거니까.



그러니 마지막 말은 내가 좋아하는 김민식 작가님의 말을 인용하여 마무리하겠다.



“외로움은 인생의 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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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