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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살이 찌면 옷을 크게 입으면 된다

그 간단한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by 시루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집에 있는 옷 중에서도 꽉 끼는 옷을 입으며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너 요즘 해이해졌어. 괴롭지? 네가 얼마나 게을렀는지 오늘 하루 똑똑히 느껴보도록 해. 그러면 그 옷을 입고 내내 불편해하며, 밥을 적게 먹고 운동도 더 악착같이 가야만 하는 것이다. 원래 몸무게로 돌아와 옷이 편해지면 그제야 안심한다. 휴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살찌래?



흔한 안부인사의 일종인 ”나 살쪘어“, ”아니야 하나도 안쪄보이는데?“ 의 대화에서,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옷 입었을 때 살찌면 묘하게 불편한 느낌 있잖아, 나는 그게 너무 싫어”. 하지만 사실 살은 죄가 없다.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건 언제나 나 스스로였다.



K는 늘 나보고 대단하다고 했다. 그것은 일 년에는 몇백 개라는 많은 날이 있는데, 단 하루도 흐트러지는 것을 용인해주지 않는 나의 태도를 일컫는 거였다. “그렇게 힘들면 오늘은 운동 쉬어”. “안돼. 하루 쉬면 이틀 쉬고 싶어 지거든”. “참 대단한 여자친구야-”라며 그는 늘 나를 올려줬지만, 정작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선상에 있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내가 내려본다고 느꼈던 것일까, 별거 아닌 질문에 매번 변명하기에 급급한 그를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나는 누군가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만 박할 뿐이다. 하지만 그와 이별한 후에서야 나는 되뇌어 보는 것이다.



자신에게 고무줄바지의 여유 따위는 주지 않는 사람이, 대체 누구에게 여유가 되어준다는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고무줄바지를 입고 출근을 해보기로 한다. 고무줄밴딩이 있는 하얀 플리츠 바지에 핑크색 티셔츠. 똥글이 안경도 착용했다. 안경을 끼면 닥터슬럼프의 아리 같은 이미지가 된다. 평소의 세팅된 출근룩은 아니지만 꽤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배가 아주 편하다. 아침의 체중계에서 본 조금 늘어난 몸무게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가벼움이다.



맞다. 살이 찌면 옷을 크게 입으면 된다. 그 간단한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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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