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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하나의 글이 무슨 거대한 영향을 주겠는가?

그러나 꾸준히 쓰는 글은 영향을 준다

by 시루

어제는 일찍 퇴근 후 미용실에 가 너무 덥수룩해진 머리를 잘라내고 집에 왔다. 이 찜통 여름에 길고 풍성한 머리로 이때까지 참 잘도 버텼다. 톨스토이가 본다면, “야 그 머리로는 시계줄은 무슨 시계하나도 살 수 있겠다“ 감탄할 정도였다. 가벼워진 머리와 함께 왠지 기분이 좋아져, 집 가는 길에 디저트도 샀다.



엄마가 보내준 옥수수 두 개에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곁들이고, 생각보다 시간이 늦지 않아 운동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 잠깐 누워서 명상을 해보고 명상이 끝나고도 하고 싶은 것이 운동이라면 과감하게 가야겠다 결정했다. 그리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그대로 잠에 빠져들어 지금 다음날 아침의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잠은 참 신기하다. 어제와 오늘 바뀐 거라고는 내 가벼워진 머리카락 밖에 없는데, 숙면을 취하고 나면 무언가 이룬 듯이 기분이 좋다. 사실 인생의 목적은 잠이 아닐까, 무엇이든 본질을 생각하면 정답을 알 수 있다는데, 우리 인생의 목적은 잠을 잘 자기 위해서였나. 그래서 태아일 때도 다시 무로 돌아갈 때도 그렇게 잠이 드는가. 아 너무 갔다. 아무튼 잘 잤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눈을 뜨며 10월이 거의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1년의 반 이상이 지났다.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어릴 때보다 기억할만한 강력한 경험이 많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늘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이라면, 우리는 이야기의 어디에 와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런 루틴 또한 좋아한다. 스파크처럼 터지는 경험들은 20대 때 다 해봐서일까, 나는 이제 시간이 천천히 쌓여 만들어 내는 가치에 좀 더 흥미를 느낀다. 글도 그렇다. 하나의 글이 무슨 거대한 영향을 주겠는가? 하지만 꾸준히 쓰는 글은 영향을 준다. 그것이 읽는 사람이든, 쓰는 사람이든 말이다.



“시간만큼 성실한 건 없지”



어떤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내내 저 말을 반복한다. 맞다, 시간만큼 성실한 건 없다. 그리고 성실한 시간뒤에 쌓아 올려진 가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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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