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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이봐, 이탈리아인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Work hard, Play hard

by 시루

도파민네이션으로 유명한 애나 렘키 교수는 말했다. 너무 근면성실한 민족, 대표적으로 한국의 경우에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노는 것도 열심히 한다고. Work hard Play hard. 내가 좋아하는 David Guetta 아저씨는 이 문장을 그렇게 외쳤지만, 사실 열심히 노는 것 또한 강렬한 보상을 바라는 도파민 중독을 의미한다.



“미국인들은 누가 쫓아오듯 일을 하고서는, 자 이제 밀러타임 miller time이야!라고 해야 겨우 일을 끝내고 맥주를 사서 티비를 보며 마시는 것밖에 못하지.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어. 삶을 즐기라고? 이봐 이탈리아인들은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우리는 이걸 ‘달콤한 게으름 Dolce Fa Niente’라고 해“

- 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대사를 내 기억대로 옮겨 적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창한 휴가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전에는 그렇게 자주 가던 해외여행도 왠지 재미가 없다. “올해 여행계획 없어?” 직장인들의 단골 스몰토크에 재미없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음은 애통하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소진되어 버렸는지 별 감흥이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탈리아에 가는 것과, 연차를 쓰고 평일 낮에 이태원 타르틴 베이커리에서 샤도네이를 마시는 게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생물학적 스트레스의 정의는 항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시 애나 램키 교수의 말로 돌아가보자. 길을 잃으면 내비게이션은 다시 경로를 탐색한다. 상처를 입으면 새 살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체온으로 맞추려고 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범위에서 벗어나게 되면, 몸은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과정을 겪는다. 중요한 것은 안전한 상태 0에서 -10이 되었으면, 다시 0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10이 아니라.



Work hard, Play hard. 이전의 나는 -10와 +10을 진자처럼 움직이던 상태가 아니었을까.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하염없이 움직이던 추는 이제서야 중앙에 멈출 준비가 된 것 같다. 혹은 이것이 ‘나이 듦’이라고 부르는 걸까 모르겠지만 이 상태가 나쁘지 않다. 삶을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은, 특별한 것으로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루틴을 사랑하는 것에도 시작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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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