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할아버지. 나는 이렇게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잠을 3시간도 못 잤다. 늘 이런 식이다.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야 할 때면 나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번 공장으로 내려가는 전 날은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지 않나. 매주 여기서의 첫날은 언제나 이를 꽉 깨물고 버티는 것 같은 느낌으로 지낸다. 이가 상하는지도 모르면서.
과제를 성공했으니 리더인 내가 공장에 파견을 가야한다는 억지에 굴복한지 1개월 차. 내가 여기로 내려올 때 선배는 여기 사람들에게 ‘몸이 약하니 신경 써서 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내가 몸이 약했나…?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오늘에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선배는 내가 버티다가 터져버리는 사람인 걸 알아서 그런 말을 했었구나- 하고. 아직은 터질 때가 되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싶다. 그러게 나는 왜 지금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을까?
나에게 회사는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 애정에 책임을 지는 것. 과제 성공은 내 애정에 대한 책임이었다. 파견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내 마음이 깜깜하다. 나는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왜 의욕을 잃었지. 왜 무기력하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마음을 남에게 설명하려 하지말자.
별개로 여기 사람들은 나에게 참 잘해준다. 같이 업무를 하는 선배들은 내 능력과 필요를 말해주려고 하고, 혼자 내려온 나에게 불편한 것이 없는지 매번 신경 써주는 사람도 많으니까. 어떤 후배는 오늘 고구마를 가져다주겠다고 난리다. 조리도구가 없을 테니 삶아서 가져다주겠다고.
“자네도 내 나이쯤 되면 세상 모든 게 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인생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연속이 아니야.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이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끌려다니는 거지”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세스作]
하지만 할아버지. 나는 이렇게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이렇게 내 인생의 의미가 없는 곳에 버려질 줄 몰랐어.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지옥같이 느껴지는 곳에 혼자 남겨질 줄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