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할 수 있다고만 한다면, 자기가 밀어붙여주겠다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선택하고 나면 답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니면 없습니다
[여덟 단어, 박웅현 作]
회사에서 어쩌다 보니 큰 과제의 총책임자를 맡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과제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심의회를 통과시켰다. 한동안 우리 팀은 신제품 런칭을 하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시기와 고객이 잘 맞아서 막내 리더인 내 과제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시작할 때는 직급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총책임자를 맡기는 것에 대해 상무님이 반대를 했었는데, 때문에 파트장님은 내 의사를 몇 번이고 물었다. 네가 할 수 있다고만 한다면, 자기가 밀어붙여주겠다고.
그렇게 나는 함정에 당했다. 나는 시작부터 만들어 온 이 과제를 누구보다 성공시키고 싶었던 사람이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업무의 무게와 상관없이 ‘못합니다’라는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책임자는 과제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권력관계들, 그리고 나보다 두 배이상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은 내 업무능력이나 말재간으로 커버되지 않았으니까. 언젠가 중요한 테스트에서 원하던 특성이 나오지 않자, 예전이라면 어떻게 하면 특성이 나올까?라는 원리적인 생각부터 했을 텐데 리더가 된 후로는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해야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얻을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때로는 아니 꽤 자주 화살표를 나에게 돌렸다. 논리가 조금 더 완벽했더라면, 발표할 때 설득을 더 잘했더라면, 중국어가 더 완벽했더라면, 혹은 직급이 더 높았더라면. 같이 해주는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나는 마지막 발표를 쏟아내듯이 했고, 공장장의 입에서 드디어 ‘승인’이라는 두 글자가 떨어졌다. 모두가 고생했다며 축하했지만 나는 하나도 개운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 길로 간단한 업무만 마무리하고 퇴근해, 집 근처 교보문고로 가 저녁도 먹지 않고 밤까지 내리 책만 읽었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토록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수능이 끝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기분이 하나도 좋지 않았다. 그냥 나를 오래 괴롭히던 것이 너무 허망하게 끝이 났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나를 데리러 온 엄마한테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꽤 오랜 시간 도서관에서 책을 봤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무엇인가 답을 알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나 추측할 뿐이다. 책에 답이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