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구나
와 엄청 맵다. 부산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전, 잠깐 고민하다 구매한 김밥이 문제다. 매운 것을 잘 먹는 나였기에 웬만한 매운 것이야 별 거 아니겠지 싶었는데, 기차에서 내리 입으로 숨을 뱉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어제는 내내 비가 오더니 기차를 4번이나 취소하고 나서는 카톡방에 오늘은 도저히 못 내려가겠다고 남겼다. 지금은 그래도 몸을 움직여 이렇게 김밥도 사고 열차도 탔다. 물론 서울역까지 택시를 탔긴 했지만 뭐 어떤가. 마음의 여유가 더 우선인 법이다.
그와 헤어진 지 5일이 지났다. 굳이 오전 오후를 따진다면, 4일과 반나절 정도가 되겠다. 그동안 적당히 회사를 다녔고, 적당히 나를 보살폈고, 출근길에는 적당히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도 운동을 좋아하는 내가 도저히 몸을 움직일 에너지가 없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 기간 동안 나는 스스로와 대화를 하거나, 짧은 생각을 글로 쓰거나, 퇴근 후 교보문고에 가서 내리 책을 읽었고, 그마저도 힘이 없는 날에는 퇴근하고 한참을 잠들었다. 그렇게 크게 울지도 슬퍼하지도 무언가를 하지도 않는 3일을 버텼다.
그러다 어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아 뛰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다 일단 달리자. 옷을 챙겨 입고 달렸다. 너무 오랜만에 뛰어서 겨우 2킬로에서 발을 멈췄다. 천천히 걸어서 잠수교에 도착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기운이 없어 잠수교 건너편 벤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벤치에서는 별다른 생각은 안 했다. 약간의 명상도 하고, 우리는 왜 이별을 했을까, 너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깊게 잠수했을 뿐이다.
참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구나, 생각을 깊게 하는 것도 에너지다. 하루 종일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운동할 힘이 없지. 특별히 나아진 것도 없이 일어났다, 다시 반대편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갑자기 뛰고 싶어졌다. 잠수교를 달렸다. 목요일 오전, 날이 흐린 잠수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크게 상관없었을 것이다. 발을 떼자마자 가슴속에서 뭔가 터져 나왔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울음도 아니고 괴로워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표효하는 짐승같이 달렸다. 표정과 눈물을 숨길 생각도 숨겨지지도 않은 채로 한강을 건넜다. 걸음을 멈춘 것은- 하늘에서 쾅하는 곧 쏟아질 듯 비가 올 거라는 소리 때문이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고 싶었다- 곧 비가 올 예정이었고 손에는 우산이 없었지만 나는 헬스장에 가서 뜨거운 물로 씻고, 비를 맞으며 교보문고에 가 책을 샀다. 나를 위한 한 권, 최근에 부친상을 당하신 선배를 위해 한 권. K. 네가 누군가를 잃었을 때는 내가 책을 선물하지 못했구나- 후회가 들었지만, 그저 그때는 때가 아니었나 보다 라며 생각을 멈췄다. 그렇게 집에 와 소파에 누웠다. 그래도 먹고살겠다고 파스타 샐러드를 사 와서 먹고 누웠다. 비가 세차게 내린다. 그러고 엉엉 울었다. 그와 헤어진 이후 처음으로 엉엉 소리 내면서 울었다.
뇌는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1순위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미화되는 것은, 그래야 사람이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별 후 눈물도 그렇다. 나는 이제야 진짜로 울었다. 뇌가 ‘이제 준비가 되었구나, 이제는 네가 이별을 받아들여도 버틸 수 있겠구나’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아니 이미 괜찮아진 것일 수도 있다.
아직 몰라, 지금이 나쁜 순간인지 좋은 순간인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만 알 수 있는 거잖아
연애가 1순위인 건, 연애하고 있으면 가장 행복해질 것 같아서 그렇게 정한 거야
연애가 아니면 좀 어때 내가 원하는 건 늘 똑같아
나는 행복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야
- 유미의 세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