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사랑은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나를 세상으로 밀어내고, 내 가시를 맨손으로 다듬어준 첫 손길로부터. 어린 시절 마룻바닥을 뛰놀며 늘 이유 없이 맞잡았던 작은 온기, 특별히 가깝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친구의 이사 소식 앞에서 예고 없이 범람하던 슬픔, 쥐 난 다리를 말없이 주무르던 투박한 스승의 손길, 등굣길마다 하루의 문을 열어주듯 건네지던 이웃의 미소까지.
그들은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기보다, 사랑이 어떤 모양으로 사람을 살게 하는지 보여주었다. 사랑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동작의 연속이었다. 나는 스쳐갔던 무수한 존재를 사랑했고, 그 사랑들은 어느새 내 세계의 윤곽을 세웠다
오랫동안 사랑하지 못해 괴로웠던 대상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항상 늦잠과 지각 사이 줄다리기를 하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 넘어져 흉터로 얼룩진 무릎과 잠이 부족해 늘 부은 눈에 작은 키.
수십 번의 상처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면서도, 겨우 한 번 새어 나온 날 선 말에는 스스로를 베어버리는 데까지 서슴없이 몰아붙이는 모습도.
나는 자랄수록 타인에게는 관대해지는 법을 익혔고,
나 자신에게는 더욱 가혹해지는 법을 숙달했다.
이 가혹함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에 가까웠다. 사랑의 결핍이 만든 생존 방식. 나는 나를 세우기 위해 나를 무너뜨리는 방식부터 배웠다. 나를 다루는 방식은 늘 심문에 가까웠다. 질문은 밤새 멈추지 않았고, 판결은 언제나 유죄였다.
나는 타인의 치열함과 성실함, 다정함과 당당함, 우직함과 영리함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들이 또렷해질수록 나는 흐려졌다. 시야에는 늘 빛이 가득했지만 그 중심에 나는 부재했다.
웃고는 있었으나 기쁘다고 말하지 못했고,
살아는 있었으나 충만하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내 삶에 빛은 존재했다. 내가 나를 비출 만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내 부재를 세계의 결함으로 착각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도 아픔 그 자체보다, 그 아픔을 안은 채 말없이 등을 곧추세우고 다시 하루를 밀어내던 사람들의 미세한 움직임에 먼저 시선이 갔다.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도 상처를 지닌 채 걷는 법을 아는 사람들. 그들은 더 큰 힘으로 상처를 덮고 생을 들어 올렸다.
상처를 지워낸 뒤에야 고요가 온다고 믿어왔던 나에게, 상처를 안은 채 더욱 단단해지는 존재들은 하나의 광휘로 다가왔다. 그 눈부심 앞에서 언어는 자주 길을 잃었고, 나는 오래 침묵 속에 머물렀다.
나는 내 상처를 꺼내는 일에 점점 말을 잃었다. 내가 적어 내려가던 문장들은 모두 엄살이 묻어 있는 듯해서 그때 이후로 나는 한동안 일기조차 적지 못했다. 나는 비추는 존재라기보다 반사하는 쪽으로만 존재했다. 그들의 눈부심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그것이 내 자랑이자 내 힘인 양 착각하며 살았다.
그들의 빛 속에 나를 겹쳐 두는 일은 편리한 피난처였다. 타인의 눈부심은 나의 공백을 가려주는 훌륭한 조명이었다. 나로만 이루어진 하루는 쉽게 방전되었지만, 그들의 빛을 반사하는 동안만큼은 마치 나에게도 광원이 있는 듯 착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빌려온 것들은 언제나 끝을 함께 품고 있다. 어른이라는 이름의 계절은 그렇게, 정전처럼 찾아왔다. 타인에게서 긷던 빛이 사라진 자리에 중심이 텅 빈 감각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의 윤곽은 흐려졌고, 공허만이 또렷해졌다.
그 공허의 이름을 처음에는 절망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옆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하나가 함께 있었다. 해방 같았던 어렴풋한 자유의 감각.
절망과 해방.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동시에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다는 두려움.
이질적인 두 감정이 같은 구멍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공허는 결핍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빛이 통과할 수 있는 틈처럼 느껴졌다.
바깥에서 긷는 사랑은 언제나 공급의 문제로 남는다. 공급은 흔들리고, 흔들림은 두려움을 낳는다. 내가 사랑을 ‘받는 일’로만 이해하는 한, 사랑은 늘 고갈의 공포와 함께한다.
내 안에서 출발한 사랑만이 비로소 닳지 않는 방향을 갖는다. 그 사랑은 세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세계의 변덕에 맡기지 않는다. 외부를 향해 빛을 더듬던 시간은 중심 없이 떠돌던 성장의 궤적이었고, 내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일은 아픔을 품은 채로도 나를 떠받치는 힘을 만든다.
깨어진 내 안의 빈자리에 무언가를 덧대는 대신, 그 자리에 새살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구원은 밖에서 나를 비추는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세계의 중심에서부터,
아주 느리고 완강하게 발산되는 온기였다.
어둠의 끝이 아닌
내 안에서 시작된 발광(發光).
나는 비로소,
내 세계의 주인이 되어간다.
by so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