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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Aug 29. 2021

H건축(하)

자신에 대한 환상이 사라질 때면

자신에 대한 환상이 사라질 때면

자신에 대한 환상이 사라질 때면타인에 대한 환상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에밀 시오랑)

대학의 전공과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경력이 많지 않아도 경영능력과 디자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 실무형 팀원들을 이끌며 디자인 사업을 해 나가는 형태가 생기던 시기였다. 경험과 시간을 차곡차곡 쌓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종의 위기감에 건축설계 전문성이 뭘까 고민했고 나의 소결론은 '건축 관련 법규를 잘 알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끄적인 것들에서 법제처 사이트를 뒤지기 전 급한 대로 법규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이 발견되곤 하는데 ‘정략적인 건축적 능력’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연말마다 하는 인사평가에서 H건축 마지막 3년 차에는 인사평가가 거의 최상위여서 연봉도 남들과 비교해 봤을 때 상승하고 있는 편이었다. 건축경기가 안 좋아 전 직원 연봉이 동결된 해도 있었지만 그냥 같은 반 친구들과 무서운 담임선생님으로 구성된 한 학급이 해가 바뀌면 반은 안 바뀐 상태로 다 같이 한 학년이 올라가듯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계속 쳐다보고 있을 때는 알아채지 못하지만 식물의 굵기가 점점 굵어지는 것을 10초 정도로 압축시켜 볼 때의 변화정도의 성장,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에서 고속 카메라로 식물의 생장을 촬영한 장면처럼 말이다.

H건축에서 하루하루가 쌓여 또 나의 뿌리가 되고 있었을 테지만 티 안 나는 성장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했다.

업계전반으로 건축설계 자체가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어딘가로 이직하기 힘들어진 나이가 된 임원들은 그냥 정년까지 버티자였고 핵심인력인 30대 중후반 팀장들은 아래위로 피가 빨렸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이어가다가 궁지에 몰리는 시점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면 임원들은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나갈 판에 조금만 더 버텨라 나도 버틴다 같은 뉘앙스로 업계 종사자들의 패배주의만 드러내었다.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건축설계업계 전반적으로 30대 중, 후반의 핵심인력들이 다른 업계로 빠져나갔다. 회사에는 20대와 50대 계층만 많아지는 뼈다귀 구조가 되어 틈만 나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다른 전문직의 연봉 상승에 비해 현저하게 가성비 떨어지는 산업에서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고 업계 전반적인 우울감만 팽배해져 갔다. 그나마 H건축은 그 이름이라도 있어서 그곳에서 커리어를 쌓으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뼈다귀에 살이 좀 붙어 있는 편이었다.     


또 퇴사

2009년부터 지지부진한 것으로 악명 높던 어느 개발사업을 2016년의 내가 맡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그렇게 예지력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이 사업을 재게 해서 다시 재검토하는데만 1-2년은 더 소요될 것이고 그래서 설계까지 이어져도 이 사업은 실현이 안될 거 같은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2022년 에도 그 개발부지의 소유권이 왔다 갔다 하는 뉴스를 본다. 부지 근처에 학교와 아파트가 있어 교육청 협의부터 기부채납 관련하여 구청 관련부서를 일주일에 두세 번 들락날락 거리며 협의를 하고 2009년부터 이 사업을 맡아온 발주처 담당자의 라테토크를 영혼 없이 올려쳐 주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학과 선택부터 직업에 이르기까지 나를 버텨온 것은 환상이었는데 다리도 없고 아가미랑 지느러미만 있는 생선을 육지로 끌어내서 억지로 걷게 하는 일에 몇 년을 바치기엔 환상 같은 것이 남지 않았다. 환상이 사라지니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 모든 사람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들로 보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저 회사에 남아있기 위해 지겨움과 쳇바퀴 도는 일상에 찌들어가며 나 스스로는 도대체 얼마나 못나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의 자기혐오 단계로 진행돼 갈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멋있는 삶을 살기 위해 시작한 건축에서 불쌍해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축 한복판에 놓여 도망칠 생각을 자주 했다.     


비겁자

H건축을 퇴사하던 때를 떠올리며 많은 글을 썼다가 지웠다. (지운게 이 정도) 당시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남들 보기에 그저 나는 번아웃을 참지 못한 퇴사자였다.

나를 회유하기 위한 프로젝트 재배정, 휴직, 연봉 등의 협상 제안 실랑이가 싫어서 계약서상 문제없는 한 달 후의 날짜를 정해놓고 그날 나가야 된다고 회사에 통보했다. 그 당시 건강상의 문제로 직장생활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지금 생각해도 뜬금없는 거짓말로 말문을 막아버리는 스파이크를 몇 번 날렸었고 물어보는 여러 사람마다 유학, 질병, 다 다르게 아무 말이나 해버릴 정도로 인수인계 외에는 말 걸지 않았으면 해 느낌의 한 달을 보냈다. 퇴사하고 조금 지나서 친한 동료들에게 돌아이 소리도 좀 듣긴 했는데 그때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 나의 지친 몸과 마음, 건축 자체에 대한 회의, H건축의 문제 등을 일장 연설해서… 아마도 더 욕먹었었나. 요새는 예전 일을 떠올리면서 글을 쓰는 일에 몰입하다 보니 나의 한구석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을 적으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누군가 좋게 봐주기 원하는 마음이 충돌하곤 하는데 H건축 이전의 나보다 단단해진 줄 알았던 나는 일단 도망치고 보는 나였다. 여러분 안녕!


에필로그 즐거웠던 일도 좀 떠올려 본다면

마지막 감정에 집중 서술하다 보니 건축설계 전체를 흑화 시켜버린 이번 게시글에 물을 타고자 즐거웠던 일도 좀 떠올려본다. 본부에서 6~7명이 다 같이 파견을 나간 적이 있다. 총괄 PM도 여자 임원이었고 프로젝트 멤버도 한 명 빼고 여자였었는데 몇 달의 파견 동안 한 명도 나태한 꼴을 서로 못 보고 위아래로 열심히 닦달하면서 당선에 진심을 다했다. 사원과 팀장의 역할로 섞여있었지만 어벤저스처럼 자기 할 일을 척척 해내는 우먼파워 팀원이었다. 여러 컨소시엄이 모여있는 중 어느 하루는 내가 다른 회사와 뭔가 언성을 높였는데 그때 어딘가에 숨어있었는지 팀장님 아까 이 구역의 미친 X 같았어요 같은 방관 후기를 남기는 팀원 때문에 뒷목을 잡는 그런 종류의 일들로 매일 피곤하고 가끔 낄낄대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프로젝트 결과도 당선으로 이어져 지금 건물이 되어있다. (초기 계획보다는 실시설계와 공사를 진행하면서 약간 꼴사납게 변했다. 전지적 모형 시점으로 건축물을 대하면 벌어지는 무서운 일을 다 함께 경험했다.)

직장생활을 버티는 것이 아침빈속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인간 동료들이었다니... 인류애가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다시는 그런 동료들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또 뭐가 좋았더라...  

퇴사를 앞두고도 팀원들에게는 평생 H건축에 뼈를 묻을 것처럼 행세를 하고 혼자 음흉하게 웃었던 것, 나는 본부장 될 때까지 안 그만둔다고 허언을 하면서 떠들었던 마지막 엠티와 그 날밤 끝나지 않는 술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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