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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Dec 14. 2021

고소공포증, 귀신이 고칼로리

12월 4-5일 설악산 울산바위 - 금강굴 (이틀 연속 산행)

나의 최애는 속초다.

속초에는 나의 두 번째 집이 몇 채 있고. (형편이 좋을 때는 설해원이나 한화리조트 쏘라노, 함께 묵는 사람이 많아지면 빨간머리앤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도 한다. 버킷리스트에 있었으나 코로나로 영업을 안 하는 듯하여 지금은 잠시 조용히 흠모만 하기로 한 완벽한 날들이라는 북스테이도 있다.)

그 외에도 속초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들 - 허리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서서 책을 고르고 싶은 문우당 서림과, 큰 쇼핑백에 양손 가득 책과 구매한 개수만큼 스탬프를 꽉꽉 채워오고 싶은 동아서점, 뻔하지만 안 들르면 서운한 칠성 조선소 카페, 노잼 수당을 받아야 할 만큼 재미없던 직장생활의 보상 같은 럭셔리한 한 그릇 청초수물회, 지장수 막걸리를 사기 위한 하나로마트, 아바이마을의 줄이어 있는 식당들, 대포항의 횟집, 만석닭강정, 포장이라도 꼭 해오는 크래프트루트 브류어리 등. 꼭이라고 하면 두세 개여야 하는데 계속 나열하게 되는... 곳들이 있다. 몇개 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음.

안 그래도 나의 속초는 최애 중 최애인데

올해 초에 나의 초기 등산 메이트 들과 비선대를 조심스럽게 다녀왔고 세 달 전 회사에서 거창하게 울산바위를 다녀왔다. 그런 뒤 속초는 나에게 설악산을 오를 수 있는 도시로 그 애정을 한껏 더 업그레이드하여 더 놔줄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설악산 소공원 진입도로에 늘어선 오래된 모텔과 민박집들을  보면서 한 번은 꼭 이런 곳에 묵어봐야겠다고 결의를 다지던 차에 낡은 산장 같은 스마일 게스트하우스를 갑작스럽게 2박 예약했다.

산에서 가까워 산행 시작에 여유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함께 밤의 설악산 인근 동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밤의 설악산 동네는 칠흑같이 어둡기만 했지만)

나와 백 씨 조 씨 시행사 건축담당이라는 같은 보직을 가져 만나면 할 말 많은 3인조 멤버는 먼지산(먼저 지나가세요 산악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나는 울산바위 다녀온 지 2달도 안된 시점이지만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매일매일 울산바위 가고 싶다. 고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3인조를 금요일 퇴근시간 나의 차에 실어 속초로 향했다.  

다들 등산에 매료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산이 있는 곳이라면 오케이.. (살면서 이렇게 처지, 취향, 타이밍이 잘 맞는 사람들 만나기 어려운 일인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밤 11시가 다되어서야 엘리베이터가 없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섰다. 1박에 팔만오천원짜리 방치고는 산 밑에 있는 방이라면 다 이 정도 되지 않나?라는 태연함을 갖춘 공간이었다. 거실도 있고 침대도 있고 싱크대도 있는 넉넉한 오두막 콘셉트.

텔레비전 위치가 좀 높은관계로 다 같이 고개를 치켜든 상태로 금요일 나 혼자 산다를 우러러보며 맥주를 한잔씩 하고 잠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 유럽 유스호스텔 여행자 느낌을 내며 첵스 시리얼과 퍽퍽한 식빵에 오뚜기 딸기잼을 발라서 한 장씩 뱃속에 챙기고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울산바위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이런 날 등산은 반댈세 라고 말하는 듯 모자가 몇 번 날아가서 주워왔다.

12월의 강원도, 게다가 설악산의 추위는 차원이 다른가 보구나. 방한 마스크에 붙은 벨크로에 모자를 고정시키고 약간은 주눅이든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 두 달 전과 같은 산을 오르고 있지만 등산 혐오자들과 함께 오를 때와 작은 경관의 변화에도 감탄할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길은 한걸음 한걸음의 값은 달랐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고소공포증.

좋은 기억만 남아 울산바위의 아찔함을 견뎠던 순간을 잊어버린 나 자신을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어려서부터 고소공포증이 심했다. 정확히 말하면 높은 곳이 무섭다기보다 난간이 낮은 곳, 또는 난간이 없는 상황에 유난히 치를 떠는 공포심리가 있었다.

울산바위는 특별한 정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울산바위 가까이 오를 수 있을 만큼 설치해놓은 철제 난간을 올라 다다르는 코스가 마지막 하이라이트인데 이곳을 처음에 얼마나 발발 떨면서 올랐는지 나의 내적 얇은 개다리춤을 추며 그래도 한번 울산바위를 오르고 난 뒤 나의 용기는 빨간 띠에서 파란 띠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느꼈었다.

그래그래 진정하고 자 한번 경험했으니 허리에 파란 띠를 보여주면서 이 계단에 올라보자고 마음을 먹고 또 그 마지막 코스에 올랐을 때. 알고 오르니 더 무서웠다. 그래도 두 달도 안돼 찾아온 울산바위 2회 차의 용기를 보여주려 오두방정은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묵묵하게 올랐다.


일행들은 짧은 시간 큰 수고 없이 연속적으로 절경을 만나는 울산바위 코스에 가성비 운운하며 좋아라 했다. ‘일상의 무게’ 같은 단어는 토요일 오전부터 월요일병 걸릴 생각 없으니 저리 치워놓고 이곳이 한국인가 이런 곳이 있었던가 입속에서 곱씹으며 첩첩산중 병풍화처럼 그려지는 산의 아웃라인을 손으로 따라 그려 보며 계단의 방향이 바뀌어 돌아설 때마다 감동의 게이지 최대치를 채우고는 했다.

울산바위 등산로 최고점에 오르니 두 달 전 왔을 때는 비도 오고 날이 흐려 보이지 않았던 동해바다가 보였다.

낭떠러지 부근에서 사진을 찍으면 멋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행동은 최대한 삼가하고 난간에 팔을 휘감은 채로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다른 단체분들 사진도 찍어드리다가 내려왔다.



권금성 케이블카

울산바위로도 성이 안차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까지 올라갔다. 권금성은 도보로는 올라갈 수 없는 코스로 케이블카를 내려서 15분 정도 산행을 하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들이 온 사람들.

사실 케이블카도 무서워서 잘 올려다보지 않았었는데 이날 너무 많은 도전을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청초수 물회를 한사바리씩 들이키고 레트로 느낌이 나는 비단 우유차라는 밀크티 집을 방문했다.

우리는 내일도 설악산에 갈 사람들이라는 약간은 피곤함과 결의에 참. 숙소에 들어가는 길 속초의 지명이 적힌 맥주와 닭강정을 사들고 또 공중파 버라이어티를 보다가 잠들었던가.



비선대와 금강굴

다음날인 일요일은 날씨가 맑고 따뜻했다.

겹겹이 껴입은 옷이 무색하여 겉옷 중 하나는 배낭에 묶고 또 하나는 허리에 묶고 등산스틱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코스여서 배낭에 찔러 넣고 즐겁게 걸었다.


이 시기가 설악산 국립 공원 산불조심기간이라 주요 구간들이 다 등산금지가 되어있고 금강굴과 울산바위 코스만 가능해서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악산 자체를 이제 안 오는 건가 싶을 정도로 휑하였다. (점심시간 이후로 설악산 소공원에는 사람이 득실득실하다. )  

비선대 끝에서 금강굴로 올라가는 코스에서는 출입자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우리가 입장하기 전 5팀 밖에 없었고 우리의 이름을 적고 갑자기 격해지는 경사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이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게 하는 낭떠러지 위 철골 계단, 휘청하고 떨어지는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상을 모든 걸음마다 하면서 금강굴에 도착했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바위에 굴 구멍이 뽕 하고 뚫려있는 걸까. 이 구멍 주변으로 형성된 크랙대로 언젠가 이 돌도 대각선으로 썰리듯이 떨어지는 걸까 그렇게 되면 최소 지진이지, 밑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은 다 무너지겠구나.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 같은 상상만 하다가 내려왔다.

멋진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서울 근교의 등산계획을 세우면서 수락산 기차바위나 관악산 연주대의 아찔한 몇 개의 구간이 무서워 얼마나 그동안 두려워했었던가. 나는 금강굴을 오르며 너무 많은 도전을 해서 이제 다 괜찮을 거 같다.. 고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진짜 그렇게 용감해진 건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최근 설악산 등산로 지도를 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는데 대청봉을 아직 안 다녀온 관계로 아직 설악산을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거실에는 못 들어가 보고 남의 현관 앞에서 신발만 벗었다 신었다 한 격.

오색 코스일지언정 대청봉 당일치기를 가봐야 한다.


다짐했으니 ‘대청봉을 오른다’를 곧 쓰게 될 것이다.


먼지산 - 먼저지나가세요
울산바위에서 내려다본 동해바다
울산바위
금강굴과 주변 크랙과 철재계단 - 공포삼위일체
계단 이랬다고
난간에 팔을 감고 태연한척 해봅니다
아바이순대, 가자미식해 - 최애
명태회냉면 - 존경
청초수물회 - 사랑
만석닭강정 - 감동
이번에 추가된 설악산 꿀호떡과 권금성케이블카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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