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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Jul 10. 2022

백패킹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산에서 쓴 일기 - 칭송에서 염려로

강요할 수 없는 취미의 세계

삶의 어느 지점에서 별안간 자연에 큰 애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 많이 알게 되어 이제는 뭐 딱히 그 자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계기나 행동 패턴이 궁금하지 않다.

노르웨이 코미디언 아레칼뵈의 최근 책에 의하면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중간 정도의 직급을 달고 매일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사람들" 이 주로 아웃도어 활동에 매진한다고,

국룰 아니 저 멀리 북유럽까지 세계적인 룰인 건가.

내가 지금 딱 저 문장의 케이스다.


취미란 자고로 누군가에게 추천하기가 참 어렵다.

특히 캠핑처럼 시간과 비용이 드는 취미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된다.

나도 남이 나에게 골프를 강요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폭력성을 느끼고 그 일방적임에 대해 목 아프게 설파했던가.

그러나 한편으로 나에게 골프를 강요하는 사람들도 골프라는 취미가 너무 좋고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속마음을 가졌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갑자기 이렇게 오픈마인드를 시전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 강요할 수 없는 취미의 세계에서 약간의 전도(?) 행위를 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 일환으로 자연 속에서 백패킹을 하면서 느낀 애정 어린 산속 일기를 투척할 거라서 하는 말이다.

여기 저기 글을 쓰다 보면 시간과 환경에 의해 내가 쓴 글들이 모순되고 상충되기도 한다. 그런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삶은 모순 투성이인 것이고, 글에 나의 좋은 인간됨만 보여주고 싶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는 내로남불의 거의 선두주자.


 

(애정 어린 마음으로) 산에서 쓴 일기


1. 산을 오르기 전 모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나에게 큰 행복을 준다.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초등학생처럼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가방을 매보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고리에 달아보고 색깔을 맞춰보는 게 재미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한 다음 그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과정일 것 같은데 백패커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일단 장비부터 갖춰놓고 어디갈지를 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순서가 바뀐 것이 아닌가...? 그 행동의 순수성을 의심했던 적이 있었으나 이제 기본적인 짐들을 다 꾸려 높고 다음 장소를 찾고 있는 여기 내 몸뚱이가 있다.




2. 산을 오르며 가장 어려운 일은 타인과 속도를 맞추는 일이다.

빠르게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쫓아갈 때 숨이 차는 것,

처지는 사람을 묵묵히 기다릴 때의 같이 처짐을 견디려면.. 결국 체력이 월등해야 한다.

나는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기다릴 때는 지치는 사람에 속한다.

단체 산행에서는 묵묵히 걷다 보면 자꾸만 거리차를 두고 앞서게 돼서 간간히 뒤를 돌아봐야 한다.

산을 오르는 길 나를 스쳐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말했다..

뒤에 오는 애들한테 정상 거의 다 왔다고 말 좀 해주세요




3. 집을 숲으로 옮겨놓는 오토캠핑보다는 내가 짊어질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만끽하는 백패킹이 매력 있구나.

제한된 가방 크기와 짊어질 수 있는 무게의 한계 속에서 거르고 거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거 같다. 취미가 지속되면 삶의 방식으로 고착된다던데 더 강인하고 가벼워져 보자.

뭐 말은 거창하지만 줄이고 줄여도 내 가방에 흑맥주 두 캔은 넣는다는 소리다.




4. 산속 야영지에서는 감추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감출 수가 없다.

각종 생리현상은 물론이고 무엇에 질겁하는지, 웃는지, 밤새 뒤척이는지, 상황이 바뀔 때 함께 해결하려고 하는지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지, 환경이나 식물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기타 등등.

하나의 텐트 안에서 개그를 치면 바로 옆 텐트에서 반응이 오고 그 옆텐트에서 재채기를 하면 그 옆 옆 텐트에서 혹시 밤에 추웠는지 대화가 오간다.




5. 숨이 턱까지 차고 옷이 땀에 젖고 때로는 산짐승과 느닷없는 사람에 대한 공포가 많았지만 함께한 사람들과 산 밑에서 헤어지면서 아쉬워한다.

산에서의 시간이 험난하고 외롭다고 해도 산 밑의 세상보다는 덜 험난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늘 많은 사람과 함께 있지만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나 내가 궁지에 몰릴 때 같은 편에 서줄 사람은 없고, 대부분의 관계 속에서는 원해서도 안된다.

이런 복잡한 산 밑에서의 세상 때문에 모든 것이 단순해진 산속에서의 인간관계에 만족하는 것 같다.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여 등산과 인생을 연결 짓는 깨달음 종용 글들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요즘의 나는 산에서 하루를 뜨겁게 보내고 온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있거나 스스로가 강해 지거나 해결되어 있는 건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다음에 다른 산 어디 갈까 생각할 뿐이지. 시간이 갈수록 하고 싶은 일들로 일상을 채우기보다는 안 하면 힘들어지는 일들로 일상을 채우는 삶을 살다 보니 나를 쉬게 해 주는 유일한 취미를 자꾸 칭송하게 된다.




사탕발림 나의 산속일기과 함께 읽어야 할 추가 내용이 있다.

산속에서의 밤은 무섭고 무섭고 무섭다.

산속에서의 밤은 밖의 소리보다 내 텐트가 펄럭이는 소리에 발작을 일으키는 일이 더 많다는 팩트를 알아가고 있지만 곡성, 곤지암 같은 영화를 아예 볼 수도 없는 사람이라면 산속의 밤, 작은 낙엽소리에도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산속에서 함께 있으면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눌 것 같지만 주변에 나무밖에 없는 자연 속에 있을 경우 이야깃거리도 줄어드는 느낌이라 굳이 사람 없는 장소를 찾아서 인기척이 그리워 라디오를 켤 때도 많다.



그리고 캠핑장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백패킹을 졸속으로 준비한다고 해도 최소 백만 원이다.

거기에 등산화와 스틱 아웃도어 상하의를 전문적으로 갖추고

나의 캠핑 파트너와 나처럼 피엘라벤 카즈카 배낭과 베른 테이블, 스노피크 침낭, 제로그램 엘찰텐 텐트, 씨투써밋 에어메트, 크레모아 랜턴, 트랜지아 반합, 티타늄 머그컵, 시에라컵, 휴대용 수저세트, 날진물병, 미스터리랜치 디팩, 각종 방수 파우치까지 다 사면 삼사백만 원의 초기 비용이 든다.


평일에 책상에 앉아서 입과 손만 움직이는 나에게는 움직임이 갈급하고 산행과 캠핑은 머리와 가슴에 남은 내가 했던 말 들었던 말이 먼지처럼 뭉치기 전에 털어내는 작업의 일환이다.

그러나 가사노동이나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나와 같을지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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