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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Jan 29. 2023

겨울산행에 필요한 건 등산을 향한 ‘광기’

폭설에 민주지산, 나 쪼금 운 거 같음

눈 내리는 산을 등산하는 일은 사진으로 감상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다.

막상 등산을 하다 보니 이렇게나 가혹한데 다들 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사진들을 올려놨는지 인스타그램은 가장행렬이 분명하다 생각했던 나의 심증은 확증이 되었다.

하여간 사람 마음만 부추기는 인스타그램 탓을 하며 잔뜩 심통이 났었던 다섯 시간의 산행을 잊어버리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 이건 절대로 내 기억 속에서 미화되면 안 된다고 이를 갈며 산행을 했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설산의 행복했던 이들처럼 지난 민주지산의 설경은 아름다웠고 나는 마치 엘사가 된 기분 같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본격 등산자랑을 써버리는 글쓴이가 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내 기억을 세세히 기록해 본다.


민주지산 등산 직전 폭설주의보로 입산이 금지될 수도 있다는 안내산악회의 공지를 들었다. 버스에 내리자 다행히 입산금지는 아니었고 등산객도 꽤 많았다. 등산 초입 도마령부터 물한리 하산까지 엄지손톱만 한 눈송이가 5시간 내내 내렸다.

등산 3분의 1 지점인 격호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배터리가 60퍼센트에서 갑자기 0퍼센트가 돼버렸다. 기록충인 나에게 이것은 램블러 기록과 사진을 못 찍는 대재앙이었다.

보조배터리를 연결하고 몇 개 챙겨간 핫팩을 휴대폰과 함께 주머니에 넣었다.

며칠 전부터 유튜브로 등산베테랑들의 겨울철 등산착장을 보고 기능성내의- 겨울기모상의-경량패딩-고어텍스를 갖춰 입었다. 방습 또는 흡습속건이라는 스펙이 확실하게 붙어있는 의류를 겹쳐 입었음에도 고어텍스 내부에서는 등산하면서 발생한 습기로 인해 그냥 빨래통에 있는 세탁물보다 못한 옷을 입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속적으로 정수리에 눈이 쌓여 털모자는 경량 패딩 모자와 함께 축축해져 정수리가 무거워졌다.

아이젠을 신은 발바닥은 눈 두께가 적당한 쿠션감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족저근막염과 유사한 병을 일으킬 것 차람 걸음마다 발바닥은 무겁고 신발아래에 모난 돌멩이를 연속해서 밟는 느낌이었다.

정상은커녕 점심을 먹기로 한 무인대피소를 찾아서 헤매고 있는데 안내산악회에서 카톡이 왔다. 지금쯤 하산을 시작하셔야 버스를 타실 수 있습니다…? 버스를 못 타는 것도 너무 무서웠지만 준비해 온 점심을 다 먹지 못하면 산행을 이어가지 못할 거 같았다. 무인대피소는 꽉 차서 겨우 비집도 앉을 정도의 틈이 있었다. 거기서 급하게 비화식용기에 너구리를 끓이고 스팸도 집어넣어 순식간에 고열량 식량을 만들어 말 그대로 위에 때려 넣었다. 급한 식사를 마치고 남은 오르막길을 올라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석에서는 인증사진도 건너뛰고 하산지점인 도마령으로 거의 뛰어내려 가기 시작.

안내 산악회 버스 시간을 놓치면 태어나서 처음 와본 그것도 눈으로 덮여버린 대략 지도상에 어디쯤인지 감으로만 알고 있는 충북 영동군이란 곳에서 버스터미널을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웬만한 직장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실제로 세분은 버스를 못 타셨음... 어찌 되었을까 그분들…

아무튼 버스를 못 탄다면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을 것 이것은 토요일의 나에게 큰 벌칙이 될 거 같아 축지법 짤처럼 미끄러져 겨우 내려왔다.


등산하는 내내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이산이나 저 산이나 눈 덮이면 다 똑같은 거 아니냐며 투덜댔던 그날의 나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안내산악회 버스가 사당역에 우리를 내려준 뒤 아스팔트를 밟았을 때의 안온함도 기억한다.

도시의 번잡함을 너무 사랑한다, 도시의 공기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했던 나의 말들도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며 민주지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추억이 조작되면서 다시 등산화와 등산복을 보완해서 설산에 다시 가볼 구상을 하고 있는 나 새끼....!


이것은 그저 광기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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