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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Mar 13. 2022

님들아 100대 명산 다하고 골프 시작 할게요

골프 얘기 넣어둬.

평일에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골프를 치고(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 등산을 싫어한다.(이건 확실하다.)

업무상 사람 만날 일이 많은 보직에 있다 보니 골프로 사회적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분들의 "골프 위드미?" 제안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주로 "저는 주말마다 등산을 가서 시간이 없습니다."로 대답한다.

난감한 표정의

"등산...? 허허 특이하신 분이네." 가 되돌아 올때가 있고

"등산이 왜 좋아요?" 로 시작되는 대화가 이어질때면 어느덧 나는 산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과 아직 남아있는 산속의 차가운 새벽 공기가 코끝에 느껴지는 기분, 그저 산을 오른다는 것만으로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 숨이 찬 것을 안정화시키는 노력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등산 초입에서의 감상 등을 늘어놓고 있다.

익히 내 등산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적당히 해..."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왜... 내 등산 이야기가 창피해...?)


이런 류의 대화는 대부분 "업무상 인간관계, 기타 등등(사실 다른 장점은 기억이 잘 안남)을 위해 너도 이제 골프를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으로 싱겁게 (그러나 잔잔한 분노를 일으키며) 종결된다.

"요즘 공좀 잘 맞아요?" 안부인사처럼 서로들 묻는 경우도 자주 있다.

여자 멤버들끼리 골프로 또 뭉치자고 이야기하거나 골프 경력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이런 골프 안부인사에 껴들지 못해서일까...?

왜 골프는 나한테 딱히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골프 이야기만 나오면 아니꼬울까 생각해본다.

첫 번째로

골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거들먹거리거나 말거나 그런 건 그냥 넘겨버리면 그만인데 선 넘어오는 경우가 있다. 나의 호불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너도 이제 골프 쳐야 하지 않아? 더 늦게 시작하면 힘들어!" 하며

너는 골프를 쳐야 한다. 그리고 이미 늦었다. 를 기조로 하는 강요가 되어 돌아올 때다.

두 번째로

나 어제 머리 올렸잖아 (아직도 이런 문장을 구사하는구나.)

내기를 위해 현금을 두둑이 챙겨라...?부터

남자들끼리만 치는데 여자분이 예쁘게 한번 껴주시면...? 까지

젖은 낙엽 같은 언행이 골프라는 하나의 바운더리 내에서는 괜찮다고 생각는 행태로 이래저래 골프 이야기를 할 때 느껴지는 아니꼬움은 현재 진행 중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별도 사업으로 실내골프장을 오픈했다. (세상에)

회사에서 골프장까지 오픈했으니 휴일에 자유롭게 이용하라고도 전달받았다.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골프장 개업식에 응원차 다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실내골프장에 처음 들어가 본 날.

그래 이렇게까지 골프가 내 일상에 개입해주는데 한번 골프 입문자가 되어줘 보겠어... 비장하게 실내 골프장을 둘러보던 중 골프채가 골프공을 때리는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진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


와 진짜 이게 이렇게 시끄러울 일...?


싫으니까 별개 다 싫다더니

가까이서 듣는 그 소리는 너무 아프게 크고 폭력적으로 들렸다.

골프 안칠 명분 하나 더 획득...






산에서 느끼는 고요함, 일상의 초월성, 단순한 하나의 몸뚱이에 불과한 작은 스스로를 느끼고 돌아오는 등산하는 토요일을 보낸 지 반년이 되어간다.

네이버 지도에 지역별 감도 높은 장소들을 찜해오고 방문하던 것이 취미이자 일상이었던 나는

도심과 주변의 도로들만 보느라 보지 못했던 그 사이사이의 수많은 산들을 발견하고 그동안 흐린눈으로 지도를 봐왔구나 싶다.


조선시대로 따지면 주인에게 돈 받고 일하는 노비 계급에 해당하는 삶을 사는중이라 남이시켜서 해야 할 일만 하다가 죽어버리기 쉽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은 심하게 짧다는 시간의 갈급함과 100대 명산 다 가기 전 무릎 나가겠지?라는 생각을 점점 자주 한다.


그런데 골프라니요.


골프가 전 국민의 취미가 되어간다고 하기엔 골프는 자본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충분해야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그렇게 대대적이고 연속적으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취미를 강요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읽고 싶은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서 등산 다음으로 좋아하는 독서모임에서도 너무 두꺼운 책을 선정할 때면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골프라니요.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기 위해 등산 어플, 비화식 요리기구, 산에서 먹는 음식, 신기한 풀, 조망 등으로 함께 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잘한 영업을 하곤 하는데 그게 강요처럼 느껴지지는 않는지 새삼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이렇게 생난리를 치고 언젠가 나도 골프가 좋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게 오르는 과정에서 단단해짐을 느끼고 험난함속에서 서로를 (또는 스스로를)다독이며 심적인 편안함을 만끽하고 기분 좋은 너덜너덜함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등산만큼 좋겠냐만은! (아 쓰다 보니 등산 장점 너무 많음)


이런생각들 머리속에 늘 맴돌았는데 어제 등산하던 중 골프 입문 제안을 기분좋게 방어할 수 있는 문장을 하나 만들어서 기록해둔다.

100대 명산 탐방이 끝나면 100대 골프장 시작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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