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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관리본부 최차장의 근황 (2)

시행사 3년, 정신적 변태(變態)를 겪음

by 최지원

이 글은 여성건축인 매거진『SOFA 5 - 혼자이지 않은 건축: 돌봄을 돌아봄』에 기고한 내용을 재편집한 버전입니다. 원문은 해당 매거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지어지는 건물들과 디벨로퍼가 건축물을 대하는 태도를 처음 접했을 때 낯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건물을 직접 사용하려는 목적보다는 매각이나 임대하기 위한 용도로 건물 을 짓는다거나, 건물을 ○○리츠, ○○호펀드라고 부르는 게 거슬 렸다. 건축주-설계자 구도가 꽤 불균형해 보이기도 했는데 개발사 업으로 지어지는 건물은 너무 많은 건물 주인이 생기는 구도였다. 건물 주인이 많아질수록 건물의 가치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세워 질 것 같지만 오히려 건물 짓는 과정과 건물 사용자의 거리는 멀어 져 많은 무책임의 총합계는 제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 무리에 속 해 한때 저항감을 가졌던 ‘최소한의 도리만 지키면서 지어지는 건 물을 만드는 일’에 동조했고 미약하게 죄책감도 들었다. 이제까지 길러온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는 힘을 부정하는 일에 놓인여진 현실이었다.

대형 건물을 짓는 일에 물리적 영향력을 가장 많이 행사 하는 건설사는 설계사가 불합리한 평면이나 자재를 제시해도 단가 를 올리거나 이윤을 남길 기회만 생각하는 집단처럼 보였다. 부동산 사업수지5) 엑셀 파일 속에서 이상적인 숫자를 만들어 내기 위 해 지어지는 건물이었다.

책상 밑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다른 사 람이 보기에는 내가 개발이익 올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이겠 지만 사실 나는 좋은 건물과 도시를 생각하는 사람이야.’라고 스스 로를 다독이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찝찝한 날들이 지나갔다.


그러던 중 화면을 채우는 까만 캐드 화면을 보는 날보다 하얀 엑셀 화면을 보는 날이 현저하게 많아지면서 나 역시 생각이 바뀌는 과정을 겪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속마음은 그게 아니야.’라는 생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내가 하는 말이 결국 내 생각이 되어갔다. 적응을 잘하는 건지 중심을 잃은 건지 원래 중심 자체가 없었던 건

지 내 생각이 내가 처한 환경에 맞춰 변했다.

나 역시 개발이익과 프로젝트 존폐에 심하게 좌지우지되는 사람, 즉 내가 내심 우습게 여긴 여타 디벨로퍼들과 한통속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좀 실망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번 생은 먹고 살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일 인분으로 태어나 버렸다. 건축 자아에 관한 단상에서 빠져나와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초롱초롱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일도 잘하려고 보니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일로 허우적거리는 중이지만 대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한 사업을 중심에 둔 이해관계자가 많고, 각 관계자들의 이익을 보는 방식과 입금이 되는 시점이 다른 것이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준공과 분양이 다 끝나야만 최종적으로 수익을 가져가는 사업의 ‘주인’ 개발사업자, 준공 시 잔금 10% 정도만 남기고 착공 시점에 대부분의 용역비를 받아 가는 설계사, 공정률에 따라 매달 또는 격월로 공사비를 받아 가는 시공사,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기에 민간 사업자의 일정대로 굳이 협력할 필요 없는 공무원, 경기가 좋거나 나쁘거나 거의 이익을 보는 금융권 등이 동상이몽을 하는 일이다. 이런 관계자들과 협업을 하면서 끝까지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일을 시행사 관점의 개발사업이라고 한다면 내가 일하는 이 세계는 어렵지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세계다. 매일 희번덕한 표정으로 ‘와, 이런 일이 다 생기네?’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 말이다. 나는 어느새 개발사업으로 지어지는 건물의 문제를 의식하기보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함과 동시에 또 다른 문제들을 예상하고 찾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일 인분의 관리자 역할을 잘하 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5) 부동산 사업수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얻는 이 익 또는 손실을 의미. 쉽게 말해서, 부동산 사업이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또는 잃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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