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막내가 장가갑니다.
나는 사남매를 키우는 동시에.
내가 사남매에 소속해 있다.
나도 2남2녀를 키우고 있지만
내가 2남2녀 중 셋째로 자랐다.
나는 나의 6살난 터울의 큰 오빠도, 3살터울의 언니도, 6살 어린 남동생도 너무 좋았다.
남들은 가운데 끼인 애매한 포지션이라 힘든 것도 많지 않냐 했는데, 나는 좋기만 했다.
나 때문에 언니, 오빠, 동생이 힘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우리집엔 4번의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었다.
언니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막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 우리가 찍은 8번의 졸업. 입학식 사진 속 꽃다발은 모두 같은 것이다. 4남매를 먹이고, 공부시키고, 가족이 한지붕 안에 살면서 먹고 사는 것 조차가 녹녹치 않던 시절....
우리는 그렇게 콩한쪽도 나눠먹고 엄마아빠의 불화속에서는 더 똘똘뭉치고 서로를 숨겨주면서 그렇게 의리의 사남매로 컸다.
그런 사남매가 오늘로 모두 공식적인 품절남,녀가 된다. 사남매의 마지막 피스인 막내가 장가를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11월 19일로 결혼날짜가 정해지고 나서,
누구도 아닌, 막내가 결혼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잘 안나서일까, 무언가 모를 먹먹함 때문일까..
가족 단톡방에는 옛날을 추억하는, 결혼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그 사이사이 우리는 늙어갔고, 엄마아빠의 표정속에는 세월이 묻어난다.
나는 저때, 미국을 건너가기 전이었다.
참, 위태로웠던 시절.. 나에게 은신처 같고 친구같고 모든 것을 나누던 언니가 남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것 같다.
그래서 형부에게는 더 못된 처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형부 쐬라 ^^;;
이 때 언니 배속에는 지금 나에게 영어과외비를 딜 하는 중3 조카가 들어있다.
그녀가 중3이 되는 동안 동생이 10명이나 생겼다는..... 너도 참... .이 현대사회에 특이한 포지션이구나...
ㅎㅎㅎ
이날, 정말 많이 웃기도 많이 울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 버스만 몇대가 내려왔고 폐백음식도 어찌나 곱게 신경을 써줬던지..
형부의 저 은갈치 양복이랑 언니 헤어랑 메이크업 어쩔꺼냐며... 이번 결혼식엔 절대 저런 이상한 짓(?) 하지 말자고 한참 웃었다.
문득 이 네명을 매일매일 먹이고 키우고, 공부시키고 살아내어서 어른만들어 시집, 장가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너무나 우리 아빠 엄마가 존경스러워졌다.
전같으면 그냥 혼자 생각하고 넘어갔을텐데..
이날은 왠일인지 감정이 북받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결혼식 전날 늦은 시간 친정 엄마에게 장문의 톡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집은 알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화들짝 놀랄정도로
이 정도 화목하고 친한게 이상할 희안한 구성요소를 갖췄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가슴 한켠이 뻐근하고 코끝이 시릿해진다.
6인이 서로 힘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하기 힘든 구조이기도 했지만.
이 의리가 뭉치고 쌓여 우리 가족은 어느 가족 못지 않은 내공이 탄탄한 가족, 나름의 방식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가족으로 묶어주었다.
이런, 사연의 우리 가족에게 있어
막내동생의 자리는 더 의미가 크다.
나에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어린시절부터 유난히 누나를 잘 따라주고 착하고, 마음결이 곱던 내 동생....
그가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품절남,
부부의 세계로 들어가고..
우리 형제는 그렇게 완벽한 8명이 되어..
더 재밌게 늙어갈 날들을 꿈꾸게 되었다.
여기는 결혼식장의 폐백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까지 아직도 우리 식구들은 어떤 사연에 휩싸여(?)식장에 남아있다.
먼 훗날, 오늘은 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런지...
오늘의 결혼식의 감동은,
예쁜 사진들이 추려지면 다시 올리는 것으로 미뤄두고 오늘은 막내 결혼식에 앞서 떠올랐던 단상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막내 결혼식 후기의 1편을 갈음한다 ^^
진성아, 은혜야~
생일 축하해!!! 너무너무 진심으로 많이 축복해!!
아까 폐백실에서 맞절하면서 얘기 했듯이.
아기 낳기만해. 누나가 다 키워줄게!!! ㅎㅎㅎ
정말, 많이 축하해.
아빠 엄마 고맙습니다.
앞으로 우리 가족 더~~ 행복하게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