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 아이와 엄마의 동반성장기
'학교가 너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게 하라'
드디어 이 문장에서, 나의 큰 딸아이에게 학습에 관한 가치관을 이렇게 마무리해야겠다는 직관적인 결론을 얻었다.
한글 배우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큰 아이를 통해 배웠다. 아이는 난독증이었다.
난.독.증. 이 세단어를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아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조금은 더 쉬웠을까?
아이 7살때 일이다. 엄마로서의 직감일까. 띄엄띄엄이라도 읽는 또래에 비해 읽기가 느려도 너무나 느리다 싶어 한글공부방을 보낸 적이 있다. 차분하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에 재능이 없고 어린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상태에서 '내 것을 ' 단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엄마로서 내가 할 최선은 '타 기관'에라도 의지해서 아이의 한글을 떼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잘 다니는 것'에 안심 하고 정신없이 일상을 지내던 어느날 공부방 선생님이 잠깐 뵐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 공부방을 찾았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방엔 각자 교재를 꼽아놓는 책장이 있었는데, '어머님, 무아께 어디있나, 한번 보시겠어요?" 한다. 빠르게 책장을 훑어보니 가지런히 차례대로 꼽혀있는 많은 교재속에 우리 아이 이름은 보이지 않고 뒤집어 꼽혀있는 책이 하나 보일 뿐. "선생님, 안 보이는데요?" 했더니 "뒤집어져 있는 교재, 그게 무아꺼예요" 하신다.
잘못꼽았나봐요? 했더니 선생님 왈. 한두번이 아니란다. 아이는 영특해서 이렇게 어눌한 실수를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할 애가 아닌데 이유가 있겠다 싶어 몇일을 두고 보셨다고 했다. 역시나 일부러 이렇게 두고 가는 것을 알아채고 오가는 모습을 티안나게 유심히 살펴보니 교재에 눈도 대지 않고 자동으로 꺼내서 학습 한 후 끝나고서는 역시 익숙한듯 뒤집어서 꽂아놓고 하원을 한다고 했다. 아이는 5살만 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인식하는 자기이름 세글자도 금방 읽어내기가 힘들었기에 자신만의 식별법을 개발해 놓은 거다.
난독증의 원인은 태아기때 뇌발달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덜 발달되었을 가능성이나 부모의 유전력이 원인이라던데, 유전쪽으로 보았을때는 우리부부 어느 쪽도 아닌것 같다. 학교시절에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 사회, 한자였던 나. 식탁에서도 항상 책을 보고 있어 혼났던 나는 확실히 아니다. 그럼 남편이여야 할 텐데 맞춤법의 미완결성, 나와 같은 것을 읽었는데 다르게 해석하던 일등 애매한 증거가 있긴 한데, 그것가지고 난독증이라고까지...아닌 듯하고 그럼 태아때 뇌발달? 아이 때 국경을 넘으며 비행기를 많이 태운게 원인이 되기도할까? 급격한 환경변화? 연연생 동생이 태어났을때 낯선 집에 몇일 머물렀던게 스트레스였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아니라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데? 라며 현실속으로 나를 자꾸 데려와야 한다.
그래도 또 과거로 속절없이 생각의 파편들이 튀어다닌다.
세번의 전학도 괜히 마음에 걸린다.
1학년 입학을 남양주에서 그 학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서울로 전학을 했고 3학년에 지금 다니는 학교에 드디어 안착했다. 학년마다 다른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데 글은 눈에 안 들어오니, 이 아이가 매일매일 학교에서 '아는 듯'이 행세하며 자신의 읽을차례가 오면 긴강했을 그 시간들이 이제야 조금 느껴진다.
2학년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학습부진'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1학년 담임선생님 입에서 처음 들었을땐 참, 초등학교 1학년에 이런 단어를 쓰는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인성이 보드랍지 않은 선생님 말뿐일거라고 외면하고 말았다. 그런데 확실히 아이들을 사랑하는게 내 눈에도 보이고 천성이 교사인 2학년 담임 선생님에게도 같은 말을 들으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아이에게 화가 나있었던것 같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곤 믿고 싶었지만 난 사실 '어떻게 내 딸이 둘째 셋째도 아닌 큰 딸이?' 믿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분명한 건 아이잘못이 아닌 그것 때문에 내 딸에게 주어야 할 사랑을 덜어내고 있거나, 주면서도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참 못나고 이기적인 엄마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의 나름 속에 입장전환이라는게 도무지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나를 이해하고 '내가 잘 하는 바를 잘 하면 되지' 라고 합리화 했는데, 이 합리화가 속수무책인 것은 아이에게 내가 준 상처를 누구보다 내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입장전환 파트에서만 보면 나의 엄마점수는 최하위에 가깝다. 아이를 아이로 보지 못하고 '나와 대등한 입장'에서 자꾸 인식하고 눈높이를 맞춰주지 않는 엄마.
나는 무릎을 낮출 수 있지만 아이들은 엄마아빠와 눈높이를 맞출 방법이 없는데도 내 시선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직장상사같은 부모. 내가 가장 싫어했던 나의 친정부모 노릇을 엇비슷하게 하고 있는 나를 아이를 통해 다시 본다.
자식을 나보다 나은 존재로 키워서 세상에 내어 놓는것이 부모역할인데, 나는 내 잣대로 아이를 계속 틀안에 넣고 가두면서 '엄마보다 큰 사람'이 되라고 어불성설을 지난 10년간 하고 살았다. 물론 체크리스트도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생활습관도, 식사예절, 인사, 인성, 대화태도 모두 중요한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거면 된다하는 것 이외에도 엄청 욕심을 부려놓고 아닌척 한 엄마였구나를 깨닫고 있다.
'원대한 내 꿈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태도'만 갖춘다면 아이에겐 더 욕심부리지 않겠다 했는데, 아이는 분명 자신에 꿈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있고, 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그 무언가가 내가 요구하는 것과 다르다해서 끊임없이 아이를 닥달했던 나.
잘 키우기 위한 방향성을 재설정 해야 하는 때를 맞았다. 그것이 큰 아이가 가진 '난독증'이 계기가 되어주려나보다. 이런 계기 없이도 내가 바뀔 수 있으면 좋은데 바뀌지 않으니 이런 일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나를 탈피해야 하는 때구나 느낌이 온다.
아이는 11살이다. 내 꿈중에 하나가 딸키워서 엄마처럼 친구처럼 허물없이 사이좋게 서로 챙기며 지내는 사이가 되는거였다. 세상 누구보다 사람을 챙길줄 아는 아이, 비가오면 우산없을 엄마가 걱정되서 꼭 전화를 하거나 마중을 나오는 아이, 새끼 손톱색깔만 바꿔도 그걸 알아채줘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 관심받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눈과 마음이 맑은 아이. 난독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더 채워내야 했던 아이의 서바이벌 눈치, 눈치로 시작된 센스와 통찰력.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보는 관찰력.
아이의 장점을 더 바라보고 나를 그곳에 맞추는 연습을 해야겠다.
쉽지 않은 여정일 수도 있다. 여태 모두를 나의 틀에 끼워넣고 사는데 성공했고, 맞춰주었고 아니 맞는 사람들과만 동행을 해 온 내가 처음으로 '자식'이라는 이름앞에 나의 틀을 스스로 망치를 들고 깨는 작업을 해야 하는 때니까. 어렴풋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만가지고 한편으로 외면했던 마음 구석 생각을 직면해야 할 때가 된것이다.
교육관련 유투브를 봤다. 거기 교육박사님이 딱 한마디로 구독자들에게 전달한 말씀을 달라는 요청에.
2030. 2040. 이 숫자를 기억하라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활동'이라는 것을 할 시대다.
우리가 예측하기 힘든 형태로 변해있겠지만, 최대한 지성과 통찰력을 발휘해 이 시대를 가늠해본다.
기계가 거의 모든 것을 대체해줄거다. 아름다운 것과 창의적인 것만 살아남고 모두 기계로 대체될 시대에 내가 우리 딸에게 취해야 할 행동은 '오늘도 왜 니 공부, 할일을 안했냐!'는 윽박보다는 '하기로 한 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는 '태도'를 보여주고 함께하는 일일테다.
그 깨지지 않던 천년된 청동자기같던 나의 틀이, 처음으로 움틀 움직이다. 자식이란 이름은 이렇게 크고 위대한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