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남편은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 나랑 부부싸움을 하면 꼭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한다는 거였다.
애들을 재운 후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들 훈육 문제, 학원 문제로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됐다.
나는 서러운 마음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어김없이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 하… 엄마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엄마가 갑자기 너무 보고싶네. 휴… 애들 클 때까지 잘 버텨야하는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어. 몸도 마음도 지치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내 휴대전화가 울린다.
남편과 통화가 끝나고 부부싸움한 것을 눈치채신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신거다
“ 네,어머니.”
“ 너그들 싸웠냐”
단순한 부부싸움에 시어머니까지 자꾸 개입이 되니 순간 너무나 화가 났다.
“ 네, 약간 말다툼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훌쩍) 자꾸 오빠가 이럴 때마다 어머니께 하소연이랍시고 미주알 고주알 이르고, 말도 함부로해서 같이 못 살겠어요! ㅠㅠ 저 너무 힘들어요 어머니! 뿌앵ㅠㅠ”
어머니의 전화 그리고 물음에 결국 억눌린 감정이 터지고, 눈물샘도 빵 터졌다.
어머니는 내 울음소리에 당황하신 듯 했다.
“ 아이고, 며늘아. 울지말어야. 못 살긴 왜 못 산다고 그냐잉. 애기들 이쁘게 키우고 잘 살아야제. 못 산다는 말 하지말어야.고만 울고. ”
울지말라고 달래주시는 어머님의 위로에 나는 조금씩 진정을 할 수 있었다.
“ 고만 울어.아가. 네 얘기 듣다본께 나도 마음이 쪼까 그렇다. 못 산다는 말 하지말고, 니랑 나랑 엄마랑 딸처럼 그렇게 지내면서 재밌게 살아보자잉.”
“ 네..어머니.. 그렇게 말씀 해주시니 감사해요..저도 앞으로 어머님을 엄마라고 생각하고 더 잘할게요. 어머니도 저 딸처럼 많이 이뻐해주세요..”
난 엄마와 딸처럼 지내자는 어머님의 말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어머님은 돌연 말을 바꾸셨다.
“ 근데,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고, 며느리는 며느리지. 솔직히 엄마와 딸이 되진 못해야.”
“ 네?ㅠㅠ(훌쩍)”
“ 시어머니랑 며느리는 절대 엄마랑 딸이 될 수 없다고. 못 알아듣것냐.”
“ 아뇨.아뇨. 알아들었어요.”
당황해서 알아들었다곤 했지만, 솔직히 무슨 뜻인지 헷갈렸다.
며느리는 절대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지 않는단건가?
아니면 ‘어쨌든 넌 며느리! 난 시어머니! 고로 난 너같은 딸 없다!’ 이런 건가?
무슨 뜻으로 얘기하신 건지 모르겠으나, 엄마와 딸처럼 살자고 하시다가 갑자기 절대 엄마와 딸은 될 수가 없다며 말을 바꾸시니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차라리 애초부터 엄마와 딸처럼 지내잔 말을 하지마시지…
어느 주말 아이들과 남편을 따라 시댁에 왔고, 식사 때가 되어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음식점에 갔다.
음식점 직원분은 시어머니와 친하신 듯 했다.
“ 엄마-왔어라? 오랜만에 오셨네. 요즘 농사일로 바쁘지라?”
“ 글제, 오늘도 한정없이 일만 했다니께. 딸이 있으믄 자주 와가꼬 일도 도와주고 그럴텐디, 내가 딸이 없어서 그런당께. 서러워죽겄어”
“ 아따, 바로 앞에 딸(=며느리를 가르키며) 있구만요. 어머니 고생한다고 맛난 거 사주러도 왔구만. 며느리랑 딸처럼 지내면 되지라.”
“ 며느리는 며느리지, 딸이 아니여. “
“ 오메- 그래도 엄마랑 딸처럼 잘 지내셔야지라 ”
“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다니께.”
시어머니는 내 앞에서 음식점 직원분과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대화를 나누셨다.
어머님의 반응에 직원분도 무안해하시며 자리를 피하셨고, 남편은 내 표정을 살폈다.
자주 오지도 못 하고, 또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해서 서운해서 그러시는 걸까?
그럼 2살, 3살 우리 아이들을 놔두고 농사일을 도우라는 것인가?
에잇, 모르겠다!
“ 저랑 어머님이랑 처음으로 뜻이 같네요! 호호. 맞아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이지 절대 엄마가 될 수 없죠.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