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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23. 2024

시어머니와 며느리

8.


남편은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 나랑 부부싸움을 하면 꼭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한다는 거였다.


애들을 재운 후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들 훈육 문제, 학원 문제로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됐다.

나는 서러운 마음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어김없이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 하… 엄마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엄마가 갑자기 너무 보고싶네. 휴… 애들 클 때까지 잘 버텨야하는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어. 몸도 마음도 지치네.”


남편 미워!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출처




그리고 조금 있으니 내 휴대전화가 울린다.

남편과 통화가 끝나고 부부싸움한 것을 눈치채신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신거다



“ 네,어머니.”


“ 너그들 싸웠냐”


단순한 부부싸움에 시어머니까지 자꾸 개입이 되니 순간 너무나 화가 났다.


“ 네, 약간 말다툼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훌쩍) 자꾸 오빠가 이럴 때마다 어머니께 하소연이랍시고 미주알 고주알 이르고, 말도 함부로해서 같이 못 살겠어요! ㅠㅠ 저 너무 힘들어요 어머니! 뿌앵ㅠㅠ


어머니의 전화 그리고 물음에 결국 억눌린 감정이 터지고, 눈물샘도 빵 터졌다.


어머니는 내 울음소리에 당황하신 듯 했다.


“ 아이고, 며늘아. 울지말어야. 못 살긴 왜 못 산다고 그냐잉. 애기들 이쁘게 키우고 잘 살아야제. 못 산다는 말 하지말어야.고만 울고. ”


울지말라고 달래주시는 어머님의 위로에 나는 조금씩 진정을 할 수 있었다.


“ 고만 울어.아가. 네 얘기 듣다본께 나도 마음이 쪼까 그렇다. 못 산다는 말 하지말고, 니랑 나랑 엄마랑 딸처럼 그렇게 지내면서 재밌게 살아보자잉.”


“ 네..어머니.. 그렇게 말씀 해주시니 감사해요..저도 앞으로 어머님을 엄마라고 생각하고 더 잘할게요. 어머니도 저 딸처럼 많이 이뻐해주세요..”


난 엄마와 딸처럼 지내자는 어머님의 말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어머님은 돌연 말을 바꾸셨다.


“ 근데,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고, 며느리는 며느리지. 솔직히 엄마와 딸이 되진 못해야.”


“ 네?ㅠㅠ(훌쩍)”


“ 시어머니랑 며느리는 절대 엄마랑 딸이 될 수 없다고. 못 알아듣것냐.”


“ 아뇨.아뇨. 알아들었어요.”


당황해서 알아들었다곤 했지만, 솔직히 무슨 뜻인지 헷갈렸다.

며느리는 절대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지 않는단건가?

아니면 ‘어쨌든 넌 며느리! 난 시어머니! 고로 난 너같은 딸 없다!’ 이런 건가?


무슨 뜻으로 얘기하신 건지 모르겠으나, 엄마와 딸처럼 살자고 하시다가 갑자기 절대 엄마와 딸은 될 수가 없다며 말을 바꾸시니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차라리 애초부터 엄마와 딸처럼 지내잔 말을 하지마시지…


괜히 더 서운하잖아요ㅠㅠ





어느 주말 아이들과 남편을 따라 시댁에 왔고, 식사 때가 되어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음식점에 갔다.

음식점 직원분은 시어머니와 친하신 듯 했다.


“ 엄마-왔어라? 오랜만에 오셨네. 요즘 농사일로 바쁘지라?”


“ 글제, 오늘도 한정없이 일만 했다니께. 딸이 있으믄 자주 와가꼬 일도 도와주고 그럴텐디, 내가 딸이 없어서 그런당께. 서러워죽겄어”


“ 아따, 바로 앞에 딸(=며느리를 가르키며) 있구만요. 어머니 고생한다고 맛난 거 사주러도 왔구만. 며느리랑 딸처럼 지내면 되지라.”


“ 며느리는 며느리지, 딸이 아니여. “


“ 오메- 그래도 엄마랑 딸처럼 잘 지내셔야지라 ”


“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다니께.”


시어머니는 내 앞에서 음식점 직원분과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대화를 나누셨다.

어머님의 반응에 직원분도 무안해하시며 자리를 피하셨고, 남편은 내 표정을 살폈다.


자주 오지도 못 하고, 또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해서 서운해서 그러시는 걸까?

그럼 2살, 3살 우리 아이들을 놔두고 농사일을 도우라는 것인가?


에잇, 모르겠다!


“ 저랑 어머님이랑 처음으로 뜻이 같네요! 호호. 맞아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이지 절대 엄마가 될 수 없죠.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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