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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16. 2024

시어머니와 며느리

7.



나는 시아버지의 사랑 듬뿍 받는 며느리였다.

아버님은 늘 큰 며느리인 나를 많이 예뻐해주셨고,

시어머니께서도 며느리들 중에 내가 애교가 제일 많다고 하셨다.




첫째 임신 8개월 쯤이었다.

한 날 모처럼 시댁에 식구들이 다 모이게 됐고,

동서들과 시어머니께서 음식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도 식사준비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시아버님께서 나를 불러 세우셨다.


“ 아가, 부엌도 좁고, 사람도 많은데 쉬거라. 게다가 임신 중이라 몸도 무거울텐데 아빠(시아버지)옆에 누워서 같이 tv나 보자.”


눈치도 없던 난 시아버지 말씀에 바로 아버님 옆에 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리고 아버님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tv를 보았다.

남편은 아버님과 나란히 누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아버님과 사이가 좋다며 흐뭇해했지만, 시어머니는 그런 날보며 동서들한테 흉을 보았다고 한다.


“ 지 시어미랑 동서들은 부엌에서 이라고 일 하는데 저것은 눈치없이 아버지랑 떠들고 놀기나 하고. 뵈기 싫다!”



내가, 눈치가 없는 거? 맞다. 인정.

허나 어머니의 아들들도 내 옆에서 웃고 떠들며 놀고 있는데 왜 며느리란 이유로 나만 욕 먹어야 하는 것인가!


아버님이 같이 티비보자고 하셨단 말이에요ㅠㅠ

철부지 20대 큰 며느리는 이 날도 참 억울 아닌 억울 합니다 :)






시댁에 가면 남편이 종종 나 대신 설거지를 해줄 때가 많았다.


동서들은 설거지를 해주는 나의 남편을 보며 앞으로 남자들도 한번씩 설거지를 하는 건 어떠냐며 좋아했다.


‘내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 하시는 시어머니는 설거지하는 당신의 아들을 보며 매우 탐탁치 않아하셨고, 역시 동서들에게 내 흉을 보았다고 한다.


“ 난 귀한 내 아들이 설거지하는 거 못본다!”



그 불만을 차라리 나에게 직접 얘기해주셨음 더 좋았을텐데, 며느리들한테 번갈아가며 전화를 하고, 며느리들 흉을 보는 어머니께 내심 서운했다.


저도 저희 집에서는 귀한 딸이에요ㅠㅠ





설 연휴를 앞 둔 어느 날,

당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느 날처럼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번쩍!하고 별이 보이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허리 밑으로는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고, 허리통증이 너무나 심했다.

내 전화를 받은 남편이 119에 신고를 해주어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타고 근처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검사를 해보니 디스크 3곳이 찢어졌다고 한다.


디스크 때문인지 잘 모르겠으나 하반신 마비까지 왔다.

다리를 꼬집어도 감각이 없고, 소변이 마려운 느낌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엄청난 허리 통증으로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몸을 틀 수도 없어 꼼짝없이 천장을 보고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어 나 대신 남편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을 했고, 퇴근 후 아이들을 챙겼다.

아이들이 잠들면 잠시 나한테 들러 직접 소변을 받아주었다.


2-3일이 지나자 점차 하반신에 감각이 돌아왔고, 디스크 시술은 받지 않고 약 일주일정도 더 입원을 하였다.


그런데 하필 그 때 입원기간이 설 연휴었다.


시부모님이 남편을 기다릴게 분명했기에, 난 남편에게 계속 이야기를 했다.


“ 나 이제 복대차고 조금씩 걸어다닐 수도 있고, 앉아서 식사도 할 수 있으니까 나 신경쓰지말고 오빠랑 애기들만이라도 시댁에 다녀와.”


“ 어우! 안돼. 안돼. 나 혼자 애들 둘 데리고 4시간되는 거리를 어떻게 가. 난 못해. 그냥 이번 설은 집에 있을래.”


남편은 시댁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남편은 시어머니께 ‘ 아내가 디스크가 찢어져 잘 걷지 못하고, 오래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서 같이 시골에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간다면 본인 혼자 애기들을 데리고 가야하는데 그건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 이런 상세한(또는 중요한) 내용은 죄다 생략하고,


아내가 입원 중이라 못간다고 아주 아주 간략히 통보를 했다.


“ 오빠가 어머니께 그렇게 얘기하면 어머니 성격에 내가 못가게 했다고 오해하시고 미워하실거야.”


“ 아파서 입원 중이라 당연히 못가는 거 잖아. 근데 왜 미워해?”


“ 그래. 그게 당연한건데..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 안하실거라고...”


“ 무슨-! 말도 안돼. 우리 엄마는 그럴 일 절대 없으니 신경쓰지마.”


남편은 호언장담을 하지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싸늘하다…








설 당일

입원 중인 나에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 네-어머니.”


“ 입원했담서. 어디가 아픈거냐.”


“ 아, 디스크 3개가 찢어졌데요.”


“ 퇴원은 언제 하냐.”


“ 아직.. 며칠 더 있어야 될 것 같아요.”


“ 오메. 환장하겄네. 그럼 우리 아들 밥은 어찌냐.”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역시나, 남편 말을 믿은 내가 바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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