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물줄기를 바꾼 일탈들
나는 보증수표였다.
-----
학창 시절, 11명이 뭉친 친구 무리가 있었다.
스무 살이 되자 기름을 끼얹은 듯 더 불붙었고,
나이트의 조명만 보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그때 몸에 밴 새벽이슬의 맛 때문인지
지금도 소주는 참이슬이 땡긴다.
그 무리에서 나는 얌전하고 착하게 생긴 친구였다.
짧고 단정한 머리, 수수한 옷차림,
넓적한 얼굴에 바른말 쓰는 애.
애들(친구와 그 여친들)이 만들어준 이미지다.
난 별로였지만, 뭐 받아들였다.
그런 내가 음주가무(특히 노래)의 재질을 보이면 애들이 더 놀라기도 했다.
친구들은 다들 놈상(?)기질이 좀 있었다.
우리는 나이트, 당구장, 술집을 미친 듯이 탐방하고 다녔다. (아니 미쳤었다)
또, 여친들 몰래 미팅도 하고
아지트에서 밤새 훌라 치며
그 빛나는 시절을 제대로 소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서관이나 서점을 다녔어야 하는데… 서로 친구 잘못 만나가 ㅎㅎ)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친구들에겐 알리바이였고
그 여친들에겐 보증수표였다.
나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나.
정작 나는 수표자체를 발행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
시간이 흘러 대학, 군대, 첫 직장을 지나
지금 회사에 들어왔다.
입사 후에도 산전, 수전, 공중전, 육박전을 겪으며 여기서도 한동안은 보증수표였다.
바르고 샌님 같다는 이미지와 함께.
근데 말했듯이,
난 그 이미지가 딱히 좋진 않았다.
물론, 내가 봐도 넓덕하이 착하게 생기긴 했다.
그러나,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어 철장 속에 갇혀 있기엔 내 영혼은 너무 입체적이고,
자유로웠다.
착한 이미지란 게 얼마나 버거운지.
그 무게를 져본 사람만 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 가지고
사람을 단정 짓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지도.
그래서 결국,
삐뚤어지기로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
그 일탈이 가져온 파급효과로 내 인생의 물줄기가 또 한 번 방향을 틀게 됐다.
<쓰고 싶을 때, 그때 계속>
------
좀 아팠습니다, 작가님들 덕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아픔 하나쯤은 품은 채 살고 있잖아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 나라도 짊어지고 간다잖아요(졸업식 노래)
때론 손잡고 때론 어깨동무도 하면서
각자 추구하는 삶을 응원해 나가요~
(아프더만 철들었나? ㅋㅋ)
-----
다연작가님이 섬 이야기에서 소개해 주신 '가조도' 가는 차 안에서 불렀습니다.
도로의 울렁임에 따라 제 목소리도 바이브레이션이 생깁니다~
노래도 제 수준에선 넘사벽이라... 그래도 좋아해서 따라 해봤습니다.
감안해서 들어주시고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역시 루이가 등장합니다. ㅎㅎ
안드로이드폰은 고정댓글의 링크로 들어보세요
https://youtu.be/8edgSqERzKQ?si=Fz6gZ3Rp-QIZ5O3u